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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바라보기] '컨택트'와 '네 인생의 이야기'

드니 빌뇌브의 '컨택트'와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 _ 글 김지섭
글 김지섭 / 그림 유다은
글 김지섭 / 그림 유다은

컨택트에서 루이스는 두 가지 중요한 선택을 한다.

하나는 딸을 낳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을 막아내는 것이다. 이 글의 요지는, 나는 그녀의 첫 번째 선택을 변호하며 두 번째 선택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좋은 서사는 어떤 인물의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변호하게 하며, 더 좋은 서사는 그 사람을 지지하게 한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좋은 서사는 필요한 서사가 되는 것이다.



1. 좋은 서사 : 루이스의 선택과 헵타포드의 시간  


<컨택트> /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컨택트> /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소설의 마지막은 이랬다.

"아이를 가지고 싶어?" 그러면 나는 미소 짓고 "응"이라고 대답하지. 나는 내 허리를 두른 그의 팔을 떼어내고, 우리는 손을 마주잡고 안으로 들어가. 사랑을 나누고, 너를 가지기 위해.*

영화의 마지막도 그랬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컨택트>의 독특한 서사구조는 원작을 따르고 있다. 영화 곳곳에 끼어드는 소녀의 장면을 거쳐온 관객은 이제 이 대답이 어떤 미래와 연결되어 있는지 깨닫는다. 이때의 사랑으로 아이는 태어날 테지만 그 아이는 너무 일찍 그들 곁을 떠날 것이다. 루이스는 그런 미래를 너무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무엇도 바꾸지 않았다.


<제 5도살장>이라는 장편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은 1998년 쓰인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보다 약 30년 앞선 커트 보니것의 작품인데, 외계종족이 나오는 이 두 소설을 보고 각각의 작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테드 창은 커트 보니것의 소설에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빌리 필그램은 루이스와 마찬가지로 미래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루이스가 헵타포드를 만나 그들의 언어를 익히면서 미래를 볼 수 있었던 것에 비해 빌리 필그램은 트라팔마도어인이라는 외계 종족을 만나기 이전부터 미래를 보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이 외계 종족을 만남으로써 빌리가 배운 게 있다면, 그것은 미래를 보는 능력이 아니라 미래를 본다는 것 그 자체에 관해서였다. 

** <제5도살장>이 미국에선 피해가기 힘들 만큼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테트 창 스스로 이 소설에 관한 작가노트에 커트 보니것의 소설을 인용하기도 했다. 한편, 1969년 출간된 <제5도살장>은 1972년에 영화화되어 그해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다. 영화는 국내에서는 <죽음의 순례자>로 소개되어 있다.


"내가 프라팔마도어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죽는다 해도 죽은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점이다. 여전히 과거에 잘 살아 있으므로 장례식에서 우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짓이다. 모든 순간,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순간은 늘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늘 존재할 것이다. (...) 마치 줄로 엮인 구슬처럼 어떤 순간에 다음 순간이 따르고 그 순간이 흘러가면 그것으로 완전히 사라져버린다는 것은 여기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착각일 뿐이다" ***

*** 커트 보니것, <제5도살장>, 45쪽, 문학동네


  언제, 어떻게 딸이 죽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아이를 낳겠다는 루이스의 선택에 관하여 이보다 더 괜찮은 변론은 없을 것이다. 다른 소설의 두 인물, 빌리 필그램과 루이스의 공통점은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게 아니라 그들이 각자의 외계 종족을 만남으로써 새로운 시간관을 깨달았다는 데 있었다.


  커트 보니것은 빌리의 시간 여행을 두고 "시간에서 풀려난다"라고 표현했는데,테드 창이 헵타포드라는 외계종족에 부여한 능력도 결국은 같은 의미였다. 헵타포드는 시간에서 풀려나가 있었다. 인간의 시간은 과거-현재-미래라는 하나의 선 위에서 순차적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헵타포드의 시간과거가 곧 현재이고, 현재가 곧 현재이며, 미래가 곧 현재였다. 인류가 이 외계종족에게 부여한 이름에 나와있듯이**** 그들은 일곱 개의 발을 지닌 원통형 몸에 일곱 개의 눈이 고르게 분배되어 있다. 그들은 일곱 방향을 볼 수 있고, 모든 방향은 곧 정면이었다. 하지만 하나의 방향만을 정면으로 둔 인간은 직선적 시간 위에서 모든 사건을 인과적으로 해석했다. 이건 소설에 잘 설명되어 있고, 영화에서 효과적으로 시각화해 낸 헵타포드의 문자에서도 드러나 있었다. 그들의 문자는 하나의 페이지 위에 모든 것을 한꺼번에 제시한 형태였다. 말하자면 헵타포드는 모든 시간에 동시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 heptapod. 여기서 hepta는 그리스어로 7을 뜻하고, pod는 발을 뜻한다.


  루이스는 헵타포드의 문자를 배움으로써 동시적 시간을 살 수 있었다. 이런 동시적 시간은, 영화에서는 갑자기 끼어드는 소녀의 장면으로, 소설에서는 딸을 향한 루이스의 목소리로 표현되었다.***** 그녀는 시간에서 풀려나가 있었다. 딸의 죽음이 있고, 또 거기엔 살아있는 딸의 모습도 있었다. 따라서 아이를 갖고 싶냐는 남편의 말에 대한 그녀의 대답을 하나의 순간으로 규정할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그 순간을 시간의 하나로, '아이의 탄생의 시작'이라거나 또는 '아이의 죽음의 시작'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었다. 모두 그녀의 현재였다. 루이스의 선택을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기꺼이 변호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당연히 그녀가 어떤 현재를 바라볼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루이스는 헵타포드의 문자를 부분적으로만 깨우쳤기 때문에 그들처럼 종족 자체의 모든 시간을 본 것은 아니다. 그녀는 오로지 자신의 인생만을 동시에 보았다.


2. 필요한 서사 : 루이스의 또다른 선택과 인간의 시간 


<컨택트> /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컨택트> /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컨택트> /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컨택트>는 원작에는 없는 긴장으로 가득한 영화였다. 헵타포드의 외형과 그들이 대화하는 방식이 얼마나 이질적인지를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시각적 긴장이었고, 끊임없이 육박해오는 소리(음악)는 청각적 긴장이었다. 그렇다면 서사적 긴장은 어디에 있을까. 외계종족이 나오는 숱한 서사에 관한 보편적 독법은 그들을 하나의 상징적 타자로 만들어내는 일일 것이다. 외계인을 무서운 타자로 축약시킬 때 인류는 확대되는데, 전혀 다른 것의 등장은 비슷한 것들을 하나처럼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처럼 보이는 것을 하나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영화의 서사적 긴장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루이스가 연구진을 통솔하는 군인에게 캥거루에 관한 유명한 일화를 들려주는 장면이 있다. 1770년, 쿡 선장이 호주 해안에 좌초되었을 때의 일이라고 한다. 그들은 그곳의 원주민을 만났는데, 선원 중 한 명이 새끼를 배의 주머니에 넣고 껑충껑충 뛰며 돌아다니는 동물을 가리키며 무엇이냐고 묻는다. 이에 원주민은 "캥거루"라 답한다. 선원들은 그 동물을 캥거루라 부르지만, 사실 원주민의 말은 "방금 뭐라고 했지?"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분명 흥미로운 이야기이지만 정작 이 장면이 기억에 남았던 건 곧바로 이어지는 군인의 대답 때문이었다. 군인은 루이스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그 원주민들의 최후를 알죠? 그들은 더 진보된 사람들에 의해 몰살당했어요."


  인간은 어떤 역사를 갖고 있는가. 헵타포드에 비추어 말하자면 인간은 역사적인 종족인데, 앞서 말했듯 시간에서 풀려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직선적' 시간 속에서 '인과적'으로 해석하고 '선형적'인 사고를 하는 인간은 시간을 축적할 수밖에 없다. 시간의 축적이 바로 역사의 토대라고 한다면, 이런 물음도 가능할 것이다. 인간은 어떤 시간을 거쳐왔는가?


<컨택트> /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컨택트> /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어라이벌 Arrival'을 생각해보자. 국내에선 '접촉'을 뜻하는 <컨택트>로 개봉했지만, 이 영화는 북미에선 '도착'을 뜻하는 <어라이벌>로 개봉했다. 앞서 쓴 군인의 말처럼, 인간의 역사에서 '도착'은 일련의 과정을 상기시킨다. 이를테면 아메리카 대륙은 도착했던 유럽인들에 의해 신대륙으로 명명되었고, 아시아의 역사도 시기적 차이가 있을 뿐 도착 이후의 이야기인 건 마찬가지였다. 기존의 문명은 무너지고 더 진보된 문명이 수혈된다. 그러기까지 지키려던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야 했고 본래의 언어는 사라져갔다. 따라서 이제까지 살아왔던 땅이 누군가에 의해 '새로운 땅'으로 명명되는 것은, 적어도 인류에게는 낯선 일이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인간의 언어가 헵타포드와 전혀 다른 구조로 되어 있어서, 그래서 인간이 헵타포드처럼 여러 시간에 놓일 수 없다는 것은 SF적인 가정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시간이 수많은 배제와 억압으로 이뤄졌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정말 이질적이고 단절된 것은 루이스 앞에 나타난 헵타포드였을까? 아니면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이었을까?


  헵타포드를 마주하는 일. 말하자면 그것은 언젠가 이 땅에 도착했던 인간들의 기억과 접촉하는 일이었다. (헵타포드의 모호한 단어에서 '무기'를 발견하는) 어떤 사람은 여기에서 공포를 되살리고 ('도구'를 발견하는) 어떤 사람은 소통의 필요를 되새긴다. 그렇다면 루이스가 언어학자라는 설정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그녀는 인류사에 남았을 또하나의 전쟁을 막았으며 잊힌 줄 알았던 하나의 어휘까지도 기억해냈다. "논 제로섬 게임" 이것은 양쪽 모두 이길 수 있는 경우에 쓰는 말인데, 그녀가 이 어휘를 찾아낸 곳은 기억의 저편이 아닌 미래였다. 정말이지 이것이 우리의 미래라면, 그녀의 선택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다. 


_ 글  김지섭



<컨택트> /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컨택트> /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네 인생의 이야기
<Story of your life> (1998作)

작가  테드 창
번역  김상훈


컨택트
<Arrival> (2016作)

드라마,SF/미국/116min
감독  드니 빌뇌브
출연  에이미 아담스, 제레미 레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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