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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영화 안내서

글_ 김규민

독립영화에 대해, 

막연히 독립 운동을 다룬 영화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제법 힙스터가 되었을 무렵엔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말을 입 안에서 웅얼거리고 다녔고요. 독립영화란 대체 무엇일까요? 오늘도 역시 당신, 그리고 저를 위한 <영화 안내서>는 독립영화의 경계를 탐구하며 시작합니다. 


1. 독립 영화에 대한 오래된 정의
 

  독립영화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 한국독립영화협회는 분명한 기준을 들어 설명합니다. ① 이윤 확보를 1차 목적으로 하는 일반 상업영화와 달리, 창작자의 예술적 의도가 우선시 되는 작품으로, 상업영화의 제작/배급 방식으로부터 독립되어 제작 완료된 영화 ② 주류 상업 영화와 다른 시각적 경험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스타일 또는 내용으로 영화 문화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영화 ③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이슈 등 주류 영화산업에서 다루지 않는 주제들을 과감히 다루고 있는 영화 ④ 노골적으로 상업적이지 않아서 경제적 리스크가 높고 마케팅이 곤란한 영화

  독협에서 제공하는 이 같은 기준은 독립영화에 대한 세계 보편의 규격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편의 규격이란, 1960년대 뉴아메리칸 시네마로부터 출발한 "창작자의 예술성, 사회성이 부각되는 비제도권 장편 영화" 즉, 작가주의와 탈자본을 주요한 명제로 하는 영화를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정의는 독립영화에 대한 가장 오래되고 유구한 설명이자 우리의 통념 대부분과 일치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벌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버린 셈이 됩니다. 독립영화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의 대답이 끝나버린 것입니다. 이제 안내서를 그만 써도 되지 않을까요?


  다행히도, 안내서를 계속 써야만 하는 이유는 충분합니다. 

앞선 정의는 당장에 유용할지는 모르겠으나, 개념적으로 오늘날 다양한 영화 지형을 고루 포착하지 못합니다. 야니스 치우마키스는 저서 <할리우드의 인디(2012)>를 통해 독립영화를 문화적, 미학적, 경제적으로 외연화하는 일이 현재에와서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하며 심지어는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먼저 야니스는 미국 독립영화의 진행을 인디펜던트-인디-인디우드 세 시기로 구분합니다. 인디펜던트 시기는 독립영화가 가장 번성했던 1980년대로, 이 시기 독립 영화 시장에는 유니버셜 등의 메이져 스튜디오들이 유입되었던 사건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클래식', '오리온 클래식' 등)이 있었습니다. 야니스는 이를 근거로 독립영화가 그 발원부터 할리우드 대자본과 강하게 유착되어 있었음을 논증하는데요. 그에 따르면, 이를 계기로 독립영화는 소구력을 갖춘 상품으로서 할리우드와 결합되기 시작합니다.

 

<숏컷>
<숏컷>

  이어진 인디시기에서는 독립영화의 경계를 뒤흔든 몇 가지 사건이 일어납니다. 첫 번째는 독립영화 제작사 파인 라인 픽쳐스가 독립영화의 난해한 문법과 내용에 할리우드의 마케팅을 더한 실험적 영화들을 제작한 일입니다. <아이다호(My Own Private)>(구스 반산트, 1991), <플레이어(The Player)>와 <숏컷(Short Cuts)>(로버트 알트만 1992, 1993) 등 독립영화의 미학적 특징을 가진 영화가 헐리우드의 pna 시스템과 결합하며 독립영화를 정의하는 산업적 전제들이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1990년대 대규모 인수합병을 통해 그 균열은 더욱 구체화됩니다. 93년 독립영화 제작의 중심이었던 미라맥스가 디즈니에 합병된 것을 시작으로, 메이저 스튜디오들의 자본이 본격적으로 독립영화 시장에 투입됩니다. 이로써 미국 인디씬은 본격적인 인디 + 할리우드, 인디우드 시기로의 전환을 맞이합니다. 더이상 독립영화는 자본의 건너편에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이 일련의 과정을 독립영화의 "미국적 토착화(vernacualrization)"라고 부르며, 독립영화가 그 고유의 다양성이나 실험성 자체를 상품화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주장합니다. 이는 '독립영화의 순수성이라는 신화'가 허위였음을 드러내는 한편 독립영화의 재영토화 혹은 탈영토화를 이야기합니다.


<플레이어>
<플레이어>

  야니스의 흥미로운 이야기는 현상에 대한 지나치게 단편적이라는 분석이라는 지적과 함께, 독립영화 특유의 힘들이 무력화되는 현상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야니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몇 가지 생각할 거리들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유효합니다. 야니스가 던져주는 주제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독립영화를 재개념화하는 일과 2) 독립영화의 경계가 무너져내리는 이 시점, '독립 영화'의 실존 그러니까, 독립영화로 표상되어 오던 자생적이고 주체적인 예술의 가능성에 관한 것입니다.

  먼저 첫 번째 작업은 무척 힘든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야니스의 말처럼, 신자유주의 시대 자본의 (경제적, 문화적, 미학적) 반대말로서 '독립'이라는 (순수성이라는 허위로부터 비롯된) 경계짓기가 유의미한가부터 고민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보다도, 우리가 이 장을 빌려 같이 해볼만한 이야기는 두 번째 주제- 21세기 독립영화씬에 닥친 위기 혹은 전환점에 대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는 한국 독립영화의 현재에 관해서도 굉장히 흥미로운 소재입니다. 지난 30여년의 시간 동안 한국 독립영화 역시 신자유주의라는 맥락 속에서 상업영화와의 혼종적인 모습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우리에게도 독립영화의 경계는 더이상 공고하지 않습니다. 안내서는 이제 방향을 조금 바꾸어, 한국 독립영화가 "충무로화" 되어간 과정을 알아보고, 이것이 새로운 단계로의 굴곡일지 위기일지 고민해보려 합니다. 


<접속>
<접속>
2. <접속>


  많은 선행 연구에 따르면, 한국 독립 영화의 시작은 1980년대로, 척박한 정치 문화적 배경으로부터 움튼 저항적 예술 운동입니다. 이러한 개념을 최초로 정초한 이들은 서울대 영화 동아리 '알라셩'에 전신으로 둔 <서울 영화 집단(1990년대 이후 '서울영상집단')>입니다. 이들은 라틴 아메리카의 혁명 영화에 관심을 갖고, 일종의 민중운동으로서 영화를 제작(<파랑새> 홍기선, 1986) 발표 해나갑니다. 이들의 영향과 더불어 영화법(외화수입 제한 철폐와 회사 허가제를 골자로 하는 5차 개정화법) 개정, 1987년 6월 항쟁, 노동자 재투쟁 등이 배경이 되어, 한국 독립 영화는 '열린 영화' 혹은 '작은 영화'라 불리며 광장의 언어를 대변하는 이들로 자리 잡아갑니다.

  이 흐름에서 주목해야 하는 이들은 바로 '장산곶매(1988)'입니다. 이들은 <오! 꿈의 나라(이은, 1987)>, <상계동 올림픽(김동원, 1988)>과, 한국 독립 영화의 질적 전환을 이룬 역사적 작품 <파업 전야(장동홍, 장윤현 1990)>로, 한국 독립 씬의 대표 기수로 자리매김합니다. 그러나 독립영화 진영이 정부 탄압과 경제적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은 채 1990년대로 넘어감에 따라, '장산곶매'는 93년 해체를 겪습니다. 이후 '장이오(장윤현 이은 오창환) 프로덕션'으로 이름을 바꾸어 인연을 이어나가던 이들은, 이은이 아내 심재명과 창립한 '명필름(95년)'을 통해 1997년에는 상업 영화 그리고 독립 영화 모두에게 전회적인 작품, 이은 제작 장윤현 연출의 <접속(1997)>을 개봉합니다.

  영화 <접속>은 독립영화인 장윤현과 이은 두 사람이 제도권의 시스템을 빌려 만든 "상업 영화"로, 독립영화 씬을 주도했던 이들이 자본과 "접속"한 사건은 양 진영 모두에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는 충무로에는 새로운 피가 수혈된 계기가, 독립 영화 진영에는 순수성에 대한 엄숙함을 깬 사건이었습니다. 상업씬에서 받은 문화적 충격은 2000년대 봉준호나 박찬욱, 류승완 등의 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창작자의 예술적 의도가 우선시 되는 작품"이자 "주류 상업 영화와 다른 시각적 경험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스타일 또는 내용으로 영화 문화의 다양성을 확대하는 영화"들이 대기업 자본을 통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편, '순수'라는 권위의 해체에 따라 독립영화 진영이 아우르는 폭은 보다 넓어졌습니다. 이는 올해 11월 전북 독립 영화제의 상영작들을 통해서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공적 다큐에서 사적 다큐로, 코믹 액션 활극부터 잔잔한 일상의 단편을 담는 단편영화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독립영화들이 전북독립영화제를 통해 대중과 만났습니다. 2007년부터는 이러한 지리적 변화를 포괄하기 위해 다양성영화라는 말로, 독립-단편-예술 영화를 한 데 부르고 있습니다.

  이처럼 자본으로부터 예술성과 사회성을 담지한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그와 분명히 구분되지 않는 곳에 독립영화가 자리하게 됨으로써 한국영화의 문화적, 미학적 경계는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독립영화의 충무로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에 대해 연구자 전우형은 "독립영화씬과 기업 자본의 접속은 할리우드 합리적 모델의 한국적 굴절"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만 그뿐일까요? 전우형의 표현대로 합리적인 과정일지, 아니면 위기일지 그것은 조금 더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3. 


  93년 대기업 멀티플렉스의 등장이후, 지방 소도시와 작은 영화관들이 차례로 폐관하며 전체 스크린의 94.8%가 대기업 소유로 전환되었습니다. 이에 시장성이 높은 영화들이(물론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전국구로 쉴 새 없이 틀어지는 "와이드 릴리즈" 마케팅 시스템이 등장했고, 독립영화를 포함해 시장성이 없거나 약한 영화들은 소외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2000년도에는 분노한 관객들이 조기 상영한 독립영화들에 대해 재상영을 요구하는 와나라고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최악의 하루>
<최악의 하루>

  계속된 비판에 하는 수 없이 멀티플렉스에서는 일명 '무비꼴라쥬', '아르떼'라는 예술영화관을 만들었으나 이는 그들 스크린의 1%밖에 되지 않는 소수에 불과했고, 여전히 주류 밖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들은 겨우 서른 곳 남짓의 스크린을 통해서만 상영될 뿐이었습니다. 관객과 만날 기회를 차단당한 독립영화 진영이 제작과 배급을 활발히 이어가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cgv를 비롯한 대기업들은 독립영화 시장에 뛰어드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아카데미 발) 독립영화들을 제작 지원해주는 cgv아트 하우스와 흥국생명의 독립영화관 씨네 큐브, KT&G에서 운영되는 상상마당, 메가박스의 아트나인 등이 등장한 것입니다. 독립영화 진영이 축소되는 동안 이들의 영향력은 점차 늘어나 오늘날 독립영화 제작과 배급의 한 축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2016년 다양성 영화 관객 결산에서 CGV 아트 하우스의 <죽여주는 여자>, <최악의 하루> 무려 두 편의 영화가 10위 안에 랭크 되었습니다. 10위 안에 두 편 이상의 영화가 오른 것은 독립영화 제작사 엣나인 필름과 CGV 아트 하우스뿐입니다.****** 지금까지 그 영향력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커온 이들은 멀지 않은 미래에는 완전히 독립영화 시장을 주도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죽여주는 여자>
<죽여주는 여자>

  이 같이 독립영화의 제작과 배급, 유통 마저도 자본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는 현상에 대해 수많은 독립영화인들은 입모아 위기를 외칩니다. 분명 멀티플렉스로 표상되는 신자유주의의 확장은 독립영화의 주체적 힘을 위협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미래에 이 땅에서 예술은 가능할까요? 아마 야니스나 전우형은 이런 말이 촌스럽다며 비꼴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런 태도는 조금 비겁하게 느껴집니다. 지켜야 할 것들은 분명히 있습니다. 생명이나 행복의 문제에 관련된. 저는, 전북 장수사람인지 서울사람인지에 관계없이 원하는 영화를 볼 수 있어야 하고, 관객이 있는지 없는지에 상관없이 영화는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에 대해 침묵한 채 마냥 유쾌한 미래란 없습니다. 



_글 김규민


Amor _아무 것도 모르면서. 우리들의 영화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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