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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 연민, [미스 프레지던트]

Mis-Presient, 2017_ 글 김다정
 

사람들이 기득권에 쉽게 감정이입을 하는가는 나의 오랜 난제였다. 

  김재환 감독의 영화 <미스프레지던트>는 이 문제에 대해, 그들을 비하하는 태도 없이 들여다본다. 영화는 그들 세대와 나의 세대에게 소통의 창구 역할은 아니더라도, 각 세대 모두 공유할 수 있는 영화라는 점에서 특별함을 지닌다.


  감독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일반적인 다큐멘터리 영화들과 다르게 <미스 프레지던트>에는 다양한 시선이 공존한다. 청주의 나이든 농부와 식당을 운영하는 울산의 부부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과, 박 전 대통령 일가를 바라보는 박사모의 시선, 그들을 바라보는-주로 카메라 렌즈를 통해 형상화된다-언론과 타인들의 시선,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의 시선이다.


  하지만 감독이 가진 조심스러운 태도는 영화가 진행되며 서서히 표면에 드러난다. 아침마다 의관을 정제한 후 군주처럼 여기는 박정희의 사진에 4배를 하는 모습, 육영수의 사진을 소중히 지갑에 넣어 다니는 모습은 그들이 신성한 의식처럼 그들을 여전히 '모시고' 있음을 알게 한다. 간혹 현실에서 볼 수 있는 모습들이기에 여기까지는 그들에게 특별할 것 없어 보인다. 하지만 집회나 갈등 상황 등 고성이 난무하는 장소에서 그들에 대한 감독의 시선은 더욱 깊어진다. 각자 자신의 감정을 분출하고 고성과 욕설이 난무하며 삿대질이 예삿일이 된 공간에서 그들은 이방인으로 보일 만큼 고요하다. 그들은 사실 예의 바르고 점잖은 사람들이다. 옥천에서 육영수 생일 행사를 놓고 승모제라 반대 하는 사람들과 박사모의 갈등 상황에서 조용히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는 부부, 의관을 갖추고 서울로 온 농부는 탄핵 반대 집회에서 침묵하며 자리를 지키다가 주위에서 박근혜의 무고를 외치는 소리가 커지니 그제야 긴장이 가득해 보이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그 미소가 너무나 환해서 보는 나는 오히려 착잡해지고 만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와 존 스콧슨은 자신들의 저서 <기득권자와 아웃사이더>에서 작은 마을 '윈스턴 파르바'라는 집단 거주지의 토착 주민들의 환상을 설명하고 있다. 토착민들은 스스로를 '우리'로, 새 주민을 '그들'로 의식하며 거리를 유지하고, 이 오래된 집안들은 공동의 과거를 지니고 있다. 토착민들은 기득권층을 형성하는데 이들은 2, 3세대 전부터 서로 이웃하며 살았던 집안들로, 그들은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로 이어질 집단 과정을 함께 겪었으며 끈끈한 응집력이 존재한다. 동시에 이곳에는 닭장처럼 암묵적인 서열이 존재한다고 한다.* 윈스턴 파르바는 놀라울 정도로 박사모와 그 모습이 닮았다. 이들은 젊은 시절부터 오랫동안 같은 시대를 거치며 서로 응집력을 형성했고 그 내부엔 위계가 존재한다. 이들이 '그들'로 여기는 아웃사이더는 집단 과정을 공유했으나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 또는 집단 과정을 공유하지도 않았으면서 자신들을 척지는 다른 세대를 지칭하는 것이다. 낯선 자들이 계속 등장하는 상황 속에서 그들은 아주 오랫동안 자신들의 마을을 구축해왔다.


  이 아웃사이더들의 시선은 영화에서 주로 다루어지지 않지만, 잠깐 등장할 때도 그 존재감이 나타난다. 이 시선은 주로 분노한 이들이 군집되어 있을 때 발생하고, 여기서 시선은 카메라로 가시화된다. 이 시선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지점은 박정희 생가에서 '박근혜 대통령 규탄' 피켓을 든 사람들과 박사모의 갈등 부분이다. 아웃사이더인 사람들과 카메라가 두르고 있는 경계는 오래된 마을을 연상시킨다. 그들 중 한 명이 카메라를 쳐내는 장면이 연출되는데,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은 공격을 받으면서도 웃음을 띤 표정이다. 그들이 받고 있는 시선이 여기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나는 그 프레임 속에 들어가 본 적도, 그 렌즈의 피사체가 되어 본 적도 없기에 이 일종의 간접 체험을 통해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언론은 프로답게 이 흥미로운 결과물을 선사할 일거리를 대하는 자신들의 태도를 숨긴다. 대중과 조우했을 때 그들의 태도가 발현된다.


  마지막은 관객의 시선이다. 영화는 그들이 왜 그렇게까지 박 전 대통령 일가를 신봉하게 되었는가를 이해하는 것보다 그들의 신념이 결코 깨지지 않을 공고한 것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한다. 전자의 경우 그동안 너무나 많이 들어왔던 이야기이기에 '정말 저게 다라고?'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들에게 그 마음은 신성함이고 일가는 그들이 공통으로 믿는 종교다. 종교를 가지게 되는 이유는 그 종교 자체에 대한 믿음이기도 하나, 많은 경우 그 이유는 자신의 상황에서 기인한다. 그들의 믿음을 공고히 하는 것은 자신들의 가장 찬란했던 기억을 공유하는 것이다. 영화는 교차편집을 통해 이 공유와 신화가 현재에도 재생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감독의 시선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을 연민하고 감독은 이들의 행동을 통해 그들에 대한 연민의 목소리를 낸다. '왜 새벽부터 일어나서 졸면서 버스와 기차에 올라 리무진 타고 쫓겨나는 신을 구하러 가는 것인지, 왜 그렇게 진심으로 미소 짓고 눈물짓는지'와 같은 목소리들. 현재와 과거에 함께 존재했고 지나간 영광과 새로운 영광을 겪었고, 그들 나름의 시련을 겪고 있음을 인정하며 감독은 그들을 주시한다. 하지만 감독이 그 연민에 동조되려 하지는 않는다는 태도는 모자이크의 방법에서 드러난다. 태극기 집회에서 연설을 들으며 앉아있는 군중 속에서 어린이들의 얼굴을 모자이크 한 것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연민하는 동시에 판단하였기에, 아이들에게 짐을 지우지 않고 그들을 보호하고자 함이다. 그리고 종종 연단에 선 사람들의 얼굴에도 모자이크를 씌우는데, 이것은 감독이 연민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뜻으로 삭제에 해당한다.


  <미스 프레지던트>의 '미스'는 'miss'가 아니라 s가 하나 삭제된 'mis'이다. 

그리고 영화의 포스터에는 두 명의 대통령이 있다. 영화 끝 무렵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감독의 의견을 정중하게 대변한다.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 근거이고 국민은 그러한 헌법을 만들어내는 힘의 원천입니다. 저희 재판부는 국민들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에 따라...' '당신들은 대통령을 모시는 사람이 아니라 대통령에게 권한을 부여한 존재로 그 힘을 가지고 있었으며, 지금 누구 덕분에 이렇게 잘 먹고 잘 사는데 라고 여전히 외치신다면 그것은 누구 한 사람이 아닌 바로 당신들 덕분'이라고. 하지만 감독의 목소리는 방향성을 상실하고 그들에게 전해지지 않을 것이다. 감독 역시 그것을 알고 있기에 그들의 온전한 모습을 담으려 한 이 영화의 방향성은 그들을 모르는, 그들의 아웃사이더들을 향한다.


_ 글   김다정 

Amor _아무 것도 모르면서. 우리들의 영화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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