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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허철녕 감독, [말해의 사계절]

: 다시 꿰어진 기억_글 김규민

지난달 말, 강남역 앞에서 <말해의 사계절>제작과 연출을 맡은 허철녕 감독을 만났다. 다큐 현장의 이야기부터, 오늘날 다큐 산업의 한계, 다큐라는 장르의 매력까지. 많은 질문을 준비했으나 사실 정말 묻고 싶었던 것은 다큐라는 작업이 당신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였다. 이에 감독은 확고한 눈빛으로 "나의 전선에 서 있는 일"이라 답했다. 올해 들은 가장 뜨거운 말이었다. 무슨 말인지 궁금하다면 인터뷰를 끝가지 읽어보시길 :)



chapter.1 <말해>가 있기까지


다큐멘터리,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허철녕 (이하 허)   한국 예술 종합원 영상원 방송영상과에 재학하면서. 다큐멘터리를 전공하는 학생의 입장으로 시작했다.


 첫 작업이 뭐였느냐면, 종로에 세훈 상가라고 들어보셨는지? 6-70년 대, 전자 제품 기계 상가- 한국 전자 산업 유통의 메카였던 곳이다. 오랫동안 유지되던 종로 세훈 상가가 2009년, 오세훈 서울 시장 시절에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녹색 성장이라는 슬로건이 있었지 않은가? 서울 시장은 그곳을 다 허물고 초록띠 공원을 만들겠다는 정책을 세웠 다. 결과적으로는 공사가 다 이루어지기 전에 멈춰버렸지만.


<명소> (2009) 다큐멘터리/한국/33분 감독 허철녕 김민지 조샛별출처 다음영화
<명소> (2009) 다큐멘터리/한국/33분 감독 허철녕 김민지 조샛별출처 다음영화


 어쨌든, 세훈 상가 앞에는 현대 상가라는 건물이 있다. 나의 첫 작업은 그 건물이 헐리는 과정을 1년 동안 기록한 것이었다. <명소>라는 작업이었고. 처음으로 인디 다큐 페스티벌에 소개 되면서 본격적으로 다큐 감독으로서 작업을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첫 장편으로 작업했었던 영화가 옥화의 집이라는 영화인데. 용산 참사가 2009년에 있었나? 영화는 그 용산 참사 현장에 살고 계시는내 외삼춘의 이야기이다. 옥화는 나의 숙모로, 그 당시 기준으로 4년에 돌아가셨다. 숙모가 돌아가시고, 숙모 소유였던 그 집- 그러니까, 재개발 붐 속에 일억 천금의 거액을 벌 기회가 되어버린 그 집을 둘러싼 가족들의 갈등을 1년간 담아낸 작업이다.



다큐의 가장 신기한 지점이 뭐냐면, 
누군가의 실제 삶에 '카메라' 를 가지고 들어가서 촬영을 한다는 일이다. 
그게 굉장히 어렵고 당사자들에게도 낯선 일이었을 텐데, 
어째서 다른 누구도 아닌 작가 자신의 가족에게로 갔나?


  최근 한국 다큐 경향 중 하나가 사적 다큐멘터리이다. 연출자의 사적인 영역을 통해서 공공의 영역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그런 작업들. <옥화의 집>도 일종의 그런 부류의 영화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던 질문은 사실, 재개발로부터 시작하지 않았다. 외삼춘은 오래전부터 집 안의 문제아였다. 무시당하고, 냉대당하는. 굉장히 내가 어릴 적부터 그런 스탠스로 배제가 진행되었다.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 때문에 외삼춘을 거부하는가? 

<옥화의 집> (2012) 다큐멘터리/한국/68분 감독 허철녕출처 다음영화
<옥화의 집> (2012) 다큐멘터리/한국/68분 감독 허철녕출처 다음영화


그러니까, 내가 용산을 찍게 된 것은, 현장의 이슈 이전에 외삼춘이 누군지 그리고 외삼춘을 둘러싼 이 오래되고 은근한 배제는 무엇인지 그 호기심에서부터였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와 그를 둘러싼 사건들을 알아보기 위해.

 내가 다 커서 카메라라는 도구가 생기니까, 이를 이용하면 가족의 욕망이랄지 외삼춘의 생각 같은 것들을 들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 다. 나아가 이것을 영화로 만들면 한국의 정상 가족이라 불리는 가족이데올로기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실제로 찍어보니 알 수 있었다. 외삼춘과 우리 가족 사이에는 '용산' 이라는 공간이 있었다. 투기 열풍의 재개발 지역이. 가족들은 외삼춘은 싫어하면서도 당신이 가지고 있던 그 집을 부러워 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아주 복잡한 욕망과 감정들이 얽히고 얽히어...이런 것들이 카메라를 들이댐으로써 좀 더 뚜렷하게 드러났다.
이처럼 다큐 현장에 감독들이 들어가는 일은 때로 감독들의 작은 호기심과 욕망. 아주 작은 하나로 시작해 이어지기도 한다.



용산에 대한 굉장히 새로운 접근이다. 
보통 거대 서사로 '투쟁' 같은 게 더 많이 강조된다.


항상 내가 천착하고자 했던 것은 국가 폭력속 집단의 목소리가 아니라 사건 속 혹은 사건 주변을 배회하는 개인들의 목소리이다. 집단으로 얽혀서 나오는 목소리들이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훨씬 더 복잡하고 구체적인 디테일 들이 사실은 많이 깎여나간다는 이야기이다. 조금 더 개인적이고 그럼으로써 인간을 비추는, 그런 목소리를 개인에게서 들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보다 더 내려가 그 공간과 사건 속에 있는 개인의 목소리를 담고 싶다. <말해>도 그 작업이었다.

<말해의 사계절> (2017) 다큐멘터리/한국/107분 감독 허철녕출처 다음영화
<말해의 사계절> (2017) 다큐멘터리/한국/107분 감독 허철녕출처 다음영화


<말해의 사계절>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허 <말해>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밀양 작업에 대한 설명이 먼저 필요할 것 같다. 밀양에서의 작업은 2014년도에 시작된 것으로, 밀양 송전탑 투쟁이 말미에 다다랐을 때, 거의 2/3 정도 완공된 상황에서 서울을 비롯한 각지 인권 활동가들이 전 밀양 송전탑 투쟁을 하셨던 여성- 할머니들을 중심으로 생애 구술사 책을 쓰자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때 아카이빙의 한 차원에서 영상을 찍자는 이야기가 있었고 마침 <두 개의 문>을 연출 하신 감독님이 제안하셔서 참여하게 되었다. 밀양에 대한 호기 심도 있었고 무엇보다 이렇게 기회가 맞물려, 활동가들과 함께 밀양으로 갔다.


<밀양, 반가운 손님> (2014) 다큐멘터리/한국/95분 감독 하샛별, 노은지,허철녕, 넝쿨, 이재환 주연 문기주, 김대진, 손인수, 윤석, 최수연 출처 다음영화
<밀양, 반가운 손님> (2014) 다큐멘터리/한국/95분 감독 하샛별, 노은지,허철녕, 넝쿨, 이재환 주연 문기주, 김대진, 손인수, 윤석, 최수연 출처 다음영화

 그리고 당시 내가 담당했던 것이 바로 말해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나는 송전탑 싸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러 갔는데. 말해할머니의 이야기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기가 막힌다. 이 촌, 시골구석에 있는 할머니에게도 국가 폭력이 이런 식으로 관통해서 지나갔다는 게.이것들이 제대로 들려져야 한다고 느꼈다. 할머니가 겪었던 시간이 더 잘 꿰어져서 보여야 한다는.

 그런 이유에서, 프로젝트가 끝난 뒤에도 나는 남았다. 밀양에 남아서 할머니를 더 기록했다. 그렇게 3년 정도 기록을 거쳐 지금의 영화가 나왔다.

 그 사이 또 <말해>를 찍게 된 중요한 계기 하나는, 할머니께 서 글을 모르신다. 2014년도 2월 달에 인권활동가들이 밀양에 가서 이야기를 채록했고, 2014년 5월 달에 책이 나왔다. <밀양을 살다>라는.
그리고 5월 말에 할머니를 뵈러 갔는데, 할머니께서 책이 나왔다며 그것을 꺼내 보여주셨다. 그때 할머니께서 책을 한 번 둘러보시면서, 당신 얼굴이 담긴 부분을 이렇게 쓸어보시는 거다. 그때 어떤 감정이었냐면….


 자기 역사를 자기가 구술했지만, 그렇게 해서 정리된 것을 자기 본인만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책이라는 것이 할머니에게는 그런(할머니를 배제하는) 매체였던 것이다. 할머니도 알 수 있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그것은 책이 아니라 영상이어야 한다는 깨달음이 있었다.



영상이라는 게 다큐 언어의 큰 매력이다?


허 그렇다. 영화는 이미지와 사운드로 구성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이미지와 사운드는 감정적인 것, 정서적인 것이다. 책만큼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주름. 거친 손. 겪고 있는 사건 속에서 드러나는 사소한 말이랄지 이런 것들이 할머니의 90년 인생을 (책 보다) 더 많이, 다른 많은 부분을 담아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작업도 그런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


앞으로의 작업? (웃음) 아직 뭐라 말씀드릴 수는 없다. 다만, <말해> 라는 작업을 마무리하고 나서 다른 질문들이 생기긴 했다. 말해 할머니는 남편이 보도연맹 학살의 피해자이시다. <말해의 사계절> 작업을 하면서 할머니 같은 경험을 가지신 학살 유족들을 개인적으로 많이 만나보았다. 그래서 <말해> 작업이 끝나고 나면, 이 학살 사건의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아직은 리서치 중이다. 말해 작업을 찍으면서 만났던 많은 분들의 이야기는 가지고 있는데 그걸 어떻게 영화로 다시 엮어낼 수 있을까, 그 부분은 아직 고민 중이다.



계속해 듣다 보니 어떤 질문이 생긴다. 
관심의 영역이 항상 사회적 다큐에 있는가? 
호기심을 가지는 영역을 묶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엄…(웃음) 아마 한국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모든 감독님들은다 마찬가지 아닐까? 그게 많든 적든 간에, 사회적인 어젠다랄지 개인의 삶에서 맞닥뜨리고 있는 부조리, 아이러니는 한국 다큐 감독들에게 주요한 소재나 주제가 된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요즘 최근 나오는 사적 다큐들에 대해서도 같이 설명할 수 있을 것이 다. 한국의 많은 사회적 모순, 욕망, 부조리들이 국가 단위로 오기도 하지만 아주 작은 가족 단위에서 극명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옥화의 집처럼 개인에서 시작한 질문이 점점 사회로 확장되는 것이다. 특히나 여성 감독님들을 필두로, 개인에서 시작해 가족 이데올로기 등을 다시 한 번 탐구, 고민해보게 되는 작업들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chapter.2 한국, 다큐

한국 정치와 다큐 사이 주목할 만한 흐름이 있었는지


2008년도 이명박 정권으로 이동하면서, 그 전에도 사실 사회적 어젠다를 지닌 작업들이 많이 나왔는데, 2008년도 정권교체 이후로 더많은 작업들이 있었다. 특히나, 최근의 경향 중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이라고 한다면, 언론인 출신의 피디들이 영화판으로 들어오는 작업들이다. 대표적으로 <다이빙벨>, <김광석> 등


 이분들은 원래 영화를 하던 분들이 아니다. 저널리즘을 추구하던 사람들인데, 이들이 영화판으로 오게 된 그 이유가 이 정권 하에서 미디어와 저널리즘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노마드처럼 피난온 거다.(웃음). 스크린이라는 창구를 통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공중파 채널에서 자기들의 목소리가 나올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그들이 (많지는 않지만) 한두 분씩 넘어오고 계신 거고, 그 시작이 2014년도 <다이빙벨>이었다.


그때 다이빙벨 이후로 영화계에 많은 탄압들이 들어오기도 했지만, 뭐 하여튼, 그때 방송계에서 일하시던 많은 분이 영화의 어떤 힘에 대해 조금씩 받아들이며 활용하려는 것 같다.




앞선 질문을 한 이유는, 방금 최근 개봉한 한국 다큐 들을 찾아보고 왔다. 
경향이 눈에 확실하게 보이더라.
사회 정치적인 고발성 다큐들이 주류이던데. 다른 소재 주제를 가진 다큐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이 흐름이 최근의 사건들과 무언가 관련을 가진 건 아닐까 하는….

음. 영화가 세상에 나와서 틀어지는 방식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사실 개봉 단계까지 가는 영화들은 아마 서치했던 내용대로 대중적인 어젠다를 가진 이야기들일 것이다. <공범자들><노무현입니다> 처럼 좀 더 대중적인 이슈을 가지고 있는 작업들이 주로 극장에서 걸린다.


그런데 그렇게 극장에까지 걸리는 영화들보다 극장에 걸리지 못하고 (특히 다큐멘터리는) 영화제나 지역 공동체 상영으로 소비되고 마는 다큐 영화들이 굉장히 많다. 그런 영화들이 90%라고 보아도 된다. 그중에서 거르고 걸러 어려운 벽을 통과한 영화들만이 개봉이라는 것을 해서 일반 관객과 만나게 되는 거다.




한국 다큐라는 장르가 제작 유통되는 장 자체가 협소 하다는?


예 굉장히.

내가 통계를 정확히 알 순 없지만, 1년에 개봉되는 다큐 편수가 서른편 내외이다. 굉장히 적은 수만이 개봉된다. 그리고 그것마저도 영진위나 몇몇 영화제의 배급 지원을 받은 작업들로, 천만 원 이천만 원의 지원을 받아 관 20~30개 되는 작은 곳에서 개봉하는 식이다. 대부분 그런 구조로 이루어진다. 그중 아주 극소수의 영화만이 대형 배급사들과 계약을 해서 조금 더 와이드 릴리즈한다. 그런 작업들은 손에 꼽을 정도.




환경이 생각보다 척박하다


개봉까지 가는 환경이.


지역이나 한국에서 다큐 제작 지원이 그렇게 열려있지 않은 편?


지역은 사실 말할 것도 없이 열악하고. 한국에서 제작지원이라고 한다면, 제일 큰 게 영진위에서 해주는 제작지원이 있을 거다. 그 외에는 영화제에서 운영하는 펀드. 부산, DMZ, EIDF 등. 이런 것들이 조금 있고. 최근에는 재단에서 지원을 해주는 펀드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예를 들어 노무현 재단 '사람 사는 영화제' 에서 지원을 해준다든지. 리영희 재단에서 지원을 해준다든지. 이렇게 재단에서 이루어지는 펀드들이 느는 추세이긴 하다. 그런데 그래도 기본적으로 제작이 이루어질 수있는, 돈을 받을 수 있는 창구들은 많지 않다. 또 그 안으로 들어간다는게 만만치 않고…. 그래서 대부분 자기 돈을 깨가면서 작업을 한다.

 나만 해도 <말해의 사계절>을 하면서 3년 6개월 촬영을 했는데, cj 아지트라는 제작 지원 프로그램(그것마저도 지금은 없어진)에 <말해의 사계절>이 운 좋게 지원을 받게 되어서, 이천오백만 원을 지원을 받았었다. 그리고 그게 3년 6개월 작업의 전부였다.(웃음) 거의 고시원에 지내면서 아끼고 살았다.



그럼 스텝들은 어떻게 꾸리나?


현장에 스텝을 데리고 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내가 모든 걸 다해야만 한다. 연출 촬영 편집을 모두 도맡았다. 그렇게 혼자 진행하면서, 서울에다가는 피디 두 분 정도만 두고 작업을 했다. 이런 과정이었 다. 한 땀 한 땀 가내수공업처럼 만들어진 작업.


 근데 이게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에서 다큐를 하는 대부분의 감독들이 1인 미디어 중심으로 활동을 한다. 그 이유 중 큰 것이 도저히 돈을 나눠 주면서 할 수 있는 제작 규모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영진위나 펀드를 지원받은 극소수의 프로젝트만이 스텝을 꾸릴 수 있고 그렇지 못한 굉장히 많은 프로젝트들은 개인, 1인 미디어 시스템으로 진행된다.




어쩌면 이런 제작 환경이 다큐 방향을 몰아가는 걸수도


그렇지. 많은 영향을 미칠 거다. 특히 현재 한국의 두드러지는 경향 성인 사적 다큐 자체가, 아까 말한 것처럼 가족이나 자기 주변 모순점에 대한 탐구의 발로일 수도 있지만, 거꾸로... 제작 규모에 관점에서는 그 밖으로 벗어나기가 사실은 참 어려운 것이다. 현재의 제작 규모나 자금 사정에 의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 주변의 이야기로 영화들이 만들어지는 걸 수도. 그래서 사적 다큐를 촬영했던 감독님들이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기가 참 어렵다. 그런 점들이 힘들다. 과제이기도 하고.




상당히 슬픈 이야기이다.
이런 환경에서 다큐를 희망 하는 후배들이 있는가?


별로 없다. 굉장히 안타깝다. 아마 내가 나온 한예종이 다큐멘터리를 전공으로 두고 있는 유일한 예술 대학일 것이다. 이 과가 한 스무 명정도인데, 그 스무 명 중 계속해 작업을 하겠다고 하는 친구들이 한 학년에 서너 명뿐이다. 방송국이라든지 큰 기업에 취업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근데 이거는 이 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적인 흐름이다. 더 나아가면 세대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세대분들에게 굶어가면서 작업 하라고 얘기하기가 참 어렵지 않은가. 많이들 그런 현실 앞에 좌절하고 그나마 전공과 비슷한 일을 찾아간다.




그럼에도 다큐를 이어가고 다양한 실험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제작 지원 차원에서나 기타 등등.


지원을 해주는 단체도 있지만, 내가 펀딩을 해주는 입장은 아니다 보니 그건 잘 모르겠다(웃음) 나 같이 제작자 집단으로 뭉쳐서 작업을 하는 단체들은 있다. 서너 명 정도 같이 뭉쳐서 작업실을 꾸린다. 혹은 소규모 창작집단을 만들어서 그들끼리 품앗이를 하면서 프로젝트를 만드는 단체들이 좀 있다. 요즘 대표적인 집단으로는, '푸른 영상'이 가장 오래되었고, '서울 영상위원회' 또, 부산을 기반으로 현재 왕성하게 활동 중인 '오지 필름', <두개문> 이나 <공동정범>, <종로의 기적> 을 만든 '연분홍 치마'가 있다. 그리고 내가 거론하지 않았지만, 이 외에도 나와 비슷한 또래의 많은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작업을 하고 있는 공간이 꽤 많이 생겨나고 있다.




부산에서 굉장히 많은 작업들이 이뤄지고 있는데, 지역 기반으로는 굉장히 이례적이다. 그 동력이 무엇일까? 부산을 둘러싼 정치적인 흐름이나 성향과 관련 있을까?


앞으로 작업을 하고 싶은 지역 중 하나가 바로 대구이다. 대구에서 있었던 학살 피해자분들을 만나며 재밌는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뭐냐면, 대구가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지역이라고 불리는데, 그곳에서 진보 운동을 하시는 분들은 정말 엄청난 강성이라는 거다. 서울보다도 강하게 발언하시고 활동도 엄청 많으시다. 내 생각에는 아마 부산도 그런게 아닐까? 아무래도 서울 경기 지역보다 보수적인 기조들이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목소리를 내는 일에는 더 큰 힘과 에너지가 든다. 대신에 그렇게 해서 발언된 목소리들은 굉장히 강한 힘을 갖는다. 박배일 감독님 같은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럼 부산의 움직임이 보수적인 정치 환경에 대한 반동일 수도 있다?


내가 사실 부산에서 활동하는 단체들을 다 아는 것도 아니라 확정적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표적으로 다큐멘터리, 특히 이 장르에서는 그 '오지 필름'이라는 곳이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고, 그 활동 기반에는 오히려 그 부산이라는 척박한 지역이 있다는 거. 그곳이기에 강하게 단련될수 있었고, 더 많은 노력들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견해이다.




한국에서 다큐는 특히나 실천적인 함의를 가졌고, 
따라서 지역에서 다큐가 죽고 살고 하는 문제 역시 
지역인들의 실천적 관심에 달린 문제인가? 하는 그런 의문이 든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주 지역은 비교적 다큐에 대한 제작이 활발하지 않다.아쉬운 부분이다.
전주도 부산처럼 움직임들이 한 데 응집되어 
다큐라는 장르가 성장할 지반이 있었으면 한다.


학교 선배 중에 김정인 감독님 <내 사랑 한옥마을>(2016作) 고향이 전주이다. 비록 서울에 계신 분이기는 하지만, 감독님은 전주라는 지역의 문제 의식에 크게 집중한다. 감독 말에 따르면, 뭐든 안 좋은 사회 지표 부분 거의 1위가 전주라고 한다. "감독의 말로는" . (웃음)

 그 분 차기작이 국회의원 정운천을 다루는데, 이도 결국 전주라는 지역의 어떤 한계이자 가능성을 고민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김정인 감독의 차기작이 개봉을 하면 전주 분들이 많은 관심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어쨌든, 내가 아는 분만해도 이렇게 작업을 하고 계신데, 아마 전라도를 고향 기반으로, 그 지역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고 뭔가를 해보려 하는 노력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전주영화제도 규모가 크고…. 사실 전주가 굉장히 좋은 인프라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말해 후반 지원을 전주에서 받아서 전주를 몇 번 왔다, 갔다 했는데, 그때 정말 훌륭한 설비와 인력들이 있어 깜짝 놀랐었다. 그래서 전주도 얼마든지 부산 케이스처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지역이 가진 가능성을 과소평가하지 않았으면.





chapter.3 나의 전선 위에서


이야기가 갑자기 이상한 데로 샜다. 
다시 다큐로 돌아가서(웃음) 다큐 현장의 매력은 무엇인가?


다큐멘터리를 작업한지 오래된 건 아니다. 2009년부터 8년 정도.

 한국은 특히나 다큐멘터리 작업이 국가폭력 현장을 기반으로 목소리를 내려는 것들이 많지 않은가. 그런 현장에서 싸우시거나 발언을 하시는 분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아 저게 진짜 얼굴이지 라는 생각이 든다.

 저런 분들을 내가 찍은 모니터 안에서 보다가, 극영화를 보면 어느 순간 가짜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극영화를 무시하는 건 절대 아니고 (웃 음) 아무리 그 안에서 리얼리티를 담보하려는 배우의 열연이 있다고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진짜 같지 않은 거지. 내가 스크린에 담았던, 경찰과 맞서고 끌려가고 하는 저 사람들의 얼굴만이 진짜 같은 거다. 그래서 어느 시점이 지나면서, 극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들이 많이 수그러들었다. 진짜를 담을 수 있는 장르가 바로 다큐 아닐까. 그런 매력들을 느낀다.




100% 현실이라는 점?


사실 다큐는 재구성이다. 100% 현실이 아니라, 현실의 질료들을 사용해 재구축을 하는 작업. 그런데 적어도 내가 현장에서 감독으로서 맞닥뜨리는 저 얼굴만은 진짜인거다. 저들의 어떤 모습이랄까, 그 얼굴 에서 어떤 거짓말을 품고 있다 하더라도, 그게 주인공들의 얼굴에서 다보인다. 그런 현실의 밀도를 각색된 허구는 따라가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게 감독님으로 하여금 지금, 여기 현실의 다큐을 할수밖에 없는 이유일까? 
재연 다큐같은 것 보다 현실의 문제에 집중하게 하는.


재연 다큐? 사실 재연을 훌륭하게 하는 게 어려운 일이다. 내가 능력이 있으면 해볼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데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도 하고. 하지만 흥미를 느끼는 소재가 생긴다면, 작가로서 방법은 매번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요하면 연기를 할 수도 있다. 어쨌건 나는 지금으로선 날것의 질료들로 만든 다큐라는 작업에 매력을 더욱 느끼기 때문에 한동안은 계속 이 방향이 이어질 것 같다.




그럼 이쯤 해서 내 인생의 다큐 물어보자


그렇지 않아도 오면서 고민 많이 했다. 좋아하는 다큐가 너무 많다! 그래도 굳이 하나 꼽아 이야기해보자면- 칠레, 파트리시오 구스만 감독님의 <빛을 향한 노스텔지어>(2010作)이다.

 감독님의 작품 중 <칠레 전투>(1970~1979作)라는 굉장히 유명한 3부작 다큐가 있다. 이것은 피노체트 정권 하에서 칠레가 어떻게 민주 화에서 좌절까지 이어지는지 굉장히 긴 시간 동안 기록한 영화이다.
감독은 이 <칠레 전투>를 찍고 한동안 칠레에 들어올 수 없었는데, 그러다 2000년 후반에 다시 칠레로 돌아오게 되어 거의 20년 만에 칠레 에서 한 작업이 <빛을 향한 노스텔지어>이다. <칠레 전투>는 엑티비즘이 강한 다큐이다. 현장 중심의 격동적 채록이 주가 되는. 그러나 이 <빛을 향한 노스텔지어>는 엄청나게 성찰적이다. 피노체트 이후 칠레의 현재에 대해 조망하는 다큐로, 영화를 짧게 소개하자면….

 칠레에 아카타마 사막이라는 곳이 있다. 거기서 피노체트 정권이 많은 운동가들을 학살했다. 그리고 유공들을사막에 전부 버렸다. 영화는 이유골들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방대한 사막에서 유족 들이 작은 뼛조각을 찾기 위해 돌아다니는 과정을 풀어내는 방식이 대단하다. 뼛조각이라는 것은 탄소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탄소는 우주의 달을 이루는 기초 성분이다. 영화는 놀랍게도 칠레 학살의 기억을 달에서부터 출발 시킨다. 단순히 그날의 학살을 이야기 하는 것뿐만 아니라 생과, 세계에 대한 성찰로까지 나아간다. 이런 식으로 영화는 감독의 성찰을 변증법적으로 계속 연결시키는데, 영화를 보고 있으면 되게 여러 가지 부분에 있어서 충격과 감동과 숭고함을 느끼게 된다.

 이 감독님의 작업을 정말로 좋아하고, 이 분의 영향이 알게 모르게 말해에도 뻗어있다. 보도연맹이라는 학살 이후를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 작품을 보고 다큐를 해야겠다고 느낀 것?


예. 학생 때 보고 정말 충격이었다. 현장에서 부딪히며 작품을 만들던 분이 20년 만에 저런 성찰까지 가능하게 되었다든 것이. 작품도 훌륭하지만 작가님의 작가로서의 성장이 내게 굉장히 큰 교감이었다. 저분 같은 작가가 되고 싶다.


 소개한 두 작품이 완전히 다르다. <칠레 전투>와 <노스텔지어>는. 칠레를 생각한다는 면에서는 같지만, 외관은 전혀 다르다. 다른 사람이 만든 것 같은. 이게 나도 작가인 입장에서 정말 쉽지 않다는 걸 안다.

자기 세계를 파괴하고 다시 만든다는 게. 아무리 나이를 먹었다고 해도 가능한 일이 아니다….

 감독님의 최근작은 <자개단추>(2015作)이다. 이번에는 칠레 바다에서 일어난 학살을 다룬다. 바다에서 학살이 어떤 식으로 일어났냐면, 철근에 사람을 묶어서 떨어트리는 식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뼈는 부식되고 없지만 그때의 철근들을 남았다. 그걸 줍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건져 올린 철근에 붙은 자개단추에 대한 이야기. 그런 작업을 또 하셨 다.




자기가 살아온 삶을, 그 폭력을 계속해 기억하려고 하는 거 같다. 
한국과 칠레의 민주화 과정이 굉장히 닮았는데, 
우리네로 치환하면 광주를 끊임없이 기억하고자 하는 그런 움직임과.


그게 필연이었을 것 같다. 자기 국가가 독재 정권 아래 무너져가는 과정을 견딜 수 없어서 칠레 전투라는 다큐를 만들게 되었던 게 아닐까.

 어쨌든 칠레에선 지금 피노체트 이후에 새로운 민주정권이 들어섰다.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결국 이게 감독의 큰 질문 중 하나인 것같다. 그렇게 해서 다 끝난 거냐? 라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다 끝나는 건가? 우리의 과거는.
그렇지 않다. 그래도 정리되지 않는 수많은 역사들이 모래사막 속에 유골들처럼 아직도 어딘가에 있다. 그 부분에 대해 감독은 끊임없이 찾고 칠레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아직 해야 하는 일들이 많다는 걸,




이런 작업들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도 많이 이런 작업들이 이뤄지고 있다. 나도 그런 걸 하고 있고.
피해자들을 채록하는 과정은 그런 거다. 아직도 그들은 있다. 흔적이 있다.




이 같은 작업이 감독 자신에게는 어떠한 의미일까?


어떤 의미일까... 나는 사실 내 삶에, 내 성장 과정에 있어서 어떤 거대한 국가폭력을 겪었다던지 그런 건 아니다. 한국 사회의 모순을 크게 느꼈던 것들도 대학에 와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조금씩 눈을 떴을 뿐이다. 다만, 나도 작업을 하면서 성장을 한다는 생각을 한다.

 아마 작업하시는 분들은 다 그런 생각을 하실 텐데. 모두 자기의 전선을 갖고 싶어 한다. 내가 작가로서 작업하는 최전선. 나 역시 지금 21세기 2017년을 살아가는 한 명의 평범한 청년으로서도 작가로서도 내가 생각하는 작업의 최전선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갖는다. 그게 내게 용산이자, 밀양이었고 앞으로는 대구일 것이다. 그곳들은, 내가 기본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곳들,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서 보지 않으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런 이들을 찾아서, 그 전선을 찾아 들어가서,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낸다.


 그냥 각자 다들 치열하게 현재를 살아가지 않는가.

작가로서 내가 다큐 멘터리를 한다는 것은, 가장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방식의 하나인것 같다. 내가 찾아 나선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은 항상 이해할 수 없는 시스템의 모순과 맞닿아있다.

그러니까, 나는 결국 국가 사회의 어긋난 지점들을 찾아 나서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이해할 수 없는 삶을 찾아 나선다.” 
그건 타자에 대한 깊은 관심이다. 
기본적으로 타자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내가 "네" 라고 하면 나만 그런 것처럼 될 텐데(웃음) 모든 다큐 감독님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기가 찍는 대상에 대한 애정이 있을 것이다. 나뿐이 아니라.

다만 나는 조금 더 개인들에게로, 개인의 목소리나 욕구에 천착하는 것이다. 그때그때의 우연한 계기들로 생기는 이해할 수 없는 잔인함, 폭력에 대한 질문들…




인터뷰의 갈무리 격으로 
이번 <말해의 사계절>에 대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가?


'오 마이 뉴스'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말해 할머니와 같은 근현대사를 관통해 살아가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주목해왔 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말해할머니고… 내가 구술 기록을 굉장히 많이 했는데, 학살 피해자 유족들을 상대로. 그분들이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이 있다. "다 내 팔자다" 라는 말이다. 내가 이런 곤궁한 삶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은 나의 팔자 탓이다, 라는.

 운명이라는 거다. 그 삶을, 바꿀 수 없는- 감당할 수 없는 것- 단지 받아들여야 하는 그런 것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특히나그 세대에선. 나는 그게 아직도 유용한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영화가 말해 할머니 한 분의 이야기를 넘어서, 말해 할머니와 같은,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쌓고 쌓아주었으면 한다. 운명이 쌓이면 운명이 아니라 경험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피해자들이 그것을 나만 겪은 일이 아니라는 걸알게 하는 작업이 첫 단계이다. 이제 그 인식을 바탕으로 무언가를 더해낼 수 있는 동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는 그러니까, 이 영화가 그런 움직임의 첫 단계였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짧게 말하면, <말해의 사계절>은 11월 말서울 독립 영화제 본선 경쟁작으로 나갔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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