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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안내서

글 김규민

페이크 다큐라던가 모큐멘터리, 다큐 픽션 같은 말을 들어봤나요?

 아니면 극영화 같은 다큐 혹은 다큐 같은 극영화를 보며 혼란스러웠던 적이 있었나요?
그래서 이게 지금 다큐라는 거야, 드라마라는 거야?
오늘 다큐 영화 안내서는 바로 그러한 지점- “다큐 영화란 무엇인가?",

다큐 영화의 외연과 경계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HISTORY OF DOCUMENTARY
'다큐멘터리' 의 역사? 시작?


 다큐라는 장르의 시작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다큐멘터리라는 단어가 어디서부터 쓰였는지는 분명합니다. 1926년, 남태평양 원주민 가족의 일상을 담은 플레 허티의 두 번째 영화 <모아나>에 대해, 비평가 존 그리 어슨이 "documentary value" 라고 표현하면서 "다큐멘터리" 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게 됩니다.

<모아나> (1926) 다큐멘터리/미국/85분 감독 로버트 플라어티, 프란시스 H.플래허티 
<모아나> (1926) 다큐멘터리/미국/85분 감독 로버트 플라어티, 프란시스 H.플래허티 


 존 그리어슨은 오늘날 다큐 원형을 정립한 사람이기도 한데요. 그는 1920년대 말 영국을 배경으로 제1세대 “다큐멘터리 운동" 을 일으켰습니다. 이는 다큐멘터리의 원형적 정체성을 정립한 사건으로, 그들 1세대 다큐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동시대의 공적·사회적 문제를 다룸

 ② 내레이션, 인터뷰, 현장녹음 등 이미 지보단 말에 크게 의존하는 설명적 방식

 ③ 거리 두기를 통해 공평 중립의 특성, 신뢰감을 구축

 ④ 관객을 설득, 행동을 유발하는 교훈 계몽 효과에 중점을 둠 *

 우리가 현재 "다큐멘터리!" 했을 때 익숙한 모습이지요? 이처럼 존 그리어슨 류 원형 혹은 고전적 다큐멘터리는 "실재의 창조적 가공" 으로 정의됩니다. 단순히 현실을 사진처럼 묘사하는 데서 나아가, 현실의 문제들을 드러내고 설득하는 방식으로 재창조하는 작업이 바로 다큐멘터리라는 것이죠.


*전평국, 「매체 다원화 시대 다큐멘터리 장르의 경계에 관한 연구」, 『영화연구 (37)』, 한국영화학회, 2008, pp. 8~9.





WHAT IS 'DOCUMENTARY'?
‘다큐멘터리’란 무엇인가?


 그러나 이러한 그리어슨 류의 다큐멘터리는 곧 굉장한 도전을 받게 됩니다. 1960년대부터 이어진 "다이렉트 시네마 운동" 과 70년대 "포스트 모더니즘 운동" 으로 실험적이며 해체적인 다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이렉트 시네마 운동은 "조작되지 않은 리얼리티에 대한 믿음, 삶이 스스로 드러내는 것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칙령으로 한 영화 운동 입니다. 이들은 고전적 다큐멘터리와는 달리, 편집이나 내레이션 일체를 허구적 개입이라고 보고, 그 모든 것들을 제거한 순수한 이미지 나열 방식을 추구합니다. 다이렉트 시네마의 전성기 이던 1969년 제작된 마이클 와들레이 감독의 < 우드스탁>은 무려 4시간에 달하는 다큐멘터리 로, 그해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모습을 아무런 편집이나 해석 없이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데요. 페스티벌 중 차에 치여 죽는 청년의 모습까지 가감 없이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다이렉트 시네마란 무엇인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우드스탁> (1970) 다큐멘터리/미국/224분 감독 마이클 와들레이출처 다음영화
<우드스탁> (1970) 다큐멘터리/미국/224분 감독 마이클 와들레이출처 다음영화

이 같은 다이렉트 시네마에 대해, 1980년대 등장한 포스트모더니즘 학자들은 "촬영" 이라는 행위 역시 일종의 개입이라 비판합니다. 그들에 따르면, 카메라를 통해 투과되고 재생되는 영상은 현실과 결코 완벽히 같을 수 없고, 그렇기에 현실의 재연이란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다이렉트 시네마의 작품들 또한 허구적 가공물에 불과하게 되는 거지요. 나아가, 그들은 실재를 압도하는 허구- 시뮬라시옹의 시대에서 허구와 실재의 이분이 가능하며 또 의미가  있는지를 묻습니다. 이는 다큐멘터리 장르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으로, 그 인식론적 혹은 존재론적 가능성에 물음을 던지는 것입니다. "무엇을 다큐멘터리라고 할 건데? 다큐라는 게 가능해?" 라면서 말이죠.

 이러한 도전의 응답으로 1980년대 말부터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하는 학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트레버 포네치/ 노엘 캐롤/ 칼 플랜팅가 등은 다큐멘터리가 감독의 의도와 태도로 결정된다고 주장합니다. 감독이 "이 이야기는 실재이다!" 라고 주장하는 영화가 바로 다큐라는 것이죠. 이들에 따르면, 그런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이야기와 실재 현실이 어떠한 지표적 관계를 맺고 있음을 계속해 강조해야만 합니다. 내가 묘사하고 있는 바가 분명 현실에도 존재하고 있음을 일부러 강조해서 드러내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그러한 강조의 장치들을 "다큐적 관습" 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다큐멘터리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듯 보입니다. 그런데 왠지 무언가 찝찝함이 남습니다. 감독이 어디까지 주장하고 있는지 관객 입장에 서는 애매하기 때문이지요. 때로 우리는 감독이 의도하지 않는 것까지 주장으로 받아 들이기도 하니까요. 특히, 다이렉트 시네마의 영화들처럼 이미지만 나열된 다큐일 때이는 더욱 모호하고 복잡해집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플랜팅가는 최근의 논문에서 재정의를 시도했지만, 그 이야기까지는 여기서 다루지 않겠습니다.


 한편 일각에서는, 그레고리 커리가 "다큐란 어떤 광학적 의미의 기록이다" 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는데요. 눈에 보이는 사실을 그대로 채록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다큐멘터리다-라는 주장입니다. 이는 다이렉트 시네마 운동과 유사한 이야기로, 숏 단위의 사진적 사실성을 다큐의 기준으로 봅니다. 이러한 커리의 주장은 기록할 수 없는 주제들을 다룬 다큐멘터리(역사 다큐나 심지어는 어떤 추상에 대해서도)에 관해선 다룰 수 없다는 문제를 갖습니다. 이에 대해 커리는 과감히 그런 영화들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데요… 이 이야기 역시 받아들이기엔 다소 극단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DEFINE DOCUMENTARY
'다큐멘터리'를 정의하는 문제 :

「텅 커터스- 어린이 극한직업」은 다큐일까?


<텅 커터스 : 어린이 극한직업> (2017) 다큐멘터리/노르웨이/80분 감독 솔베이 S.멜케로엔출처 다음영화
<텅 커터스 : 어린이 극한직업> (2017) 다큐멘터리/노르웨이/80분 감독 솔베이 S.멜케로엔출처 다음영화


이번 EIDF 영화제에서 재밌게 본 영화「텅 커터스- 어린이 극한직업」은 아홉 살 소녀 월바가 노르웨이 어촌에서 대구 혀 자르기 알바를 하는 과정을 그린 아주 사랑스러운 다큐멘터리입니다. 다큐는 시작부터 끝까지 아주 재밌는 짜임새를 하고 있습니다. 꼭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같기도 하고,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영화 초반 월바의 친구들과 가족들을 소개하는 장면은 마치 웨스턴 무비 같아 보일 정도입니다. 흔히 등장하는 진지한 내레이션도, 인터뷰도 없습니다. 귀여운 아홉 살짜리들의 대화만 오가지요. 다큐란 자고로 김상중 아저씨가 등장해야 하며, 사회적 이슈들을 다루어야 한다는 저의 편견이 와장창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니 문득 궁금해지더군요. 이런 영화도 다큐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극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면 극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 까? 소재를 현실에서 가져오면 그건 다큐가 되는 걸까? 그렇다면 어떤 역사 영화는 다큐로 봐야 하지 않을까? 단지 편집의 크고 작음이 문제인 걸까? 이번 호는 바로 이러한 질문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누군가는「텅 커터스- 어린이 극한직업」에 대해, 다큐드라마다~ 다큐독이다 등등, 극의 성격을 갖춘 다큐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또다른 누군가는 너무 순수성이 떨어진다며 픽션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강경하게 이야기하기도 하죠. 결국 '다큐멘터리는 뭘까? 픽션과 어떤 점에서 다를까?' 라는 문제 즉, 다큐의 외연와 개념을 확정하는 문제는 아직 그럴싸한 답을 찾고 있지 못합니다. 프랑수아 니네는 "양극단에서 볼때, 다큐멘터리에는 항상 약간의 픽션이 존재하고 픽션에도 언제나 약간의 다큐멘터리가 존재한다. 이 둘 사이에는 배합 비율에 따라 가능한 수천 가지의 변형이 존재한다." 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꽤 그럴듯한 말이죠?


오늘날 다큐의 외연을 결정하는 문제는 계속해서 더욱 치열한 국면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다큐가 TV 매체를 통해 대중적이고 오락적인 장르로 거듭나기 시작하며, 다큐 + 픽션의 수많은 혼종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 그 배경인데요. 모큐멘터리(페이크 다큐), 다큐드라마(「기막힌 이야기 실제상황」),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다큐 프라임-한반도의 공룡」, EIDF에서는 「홀로코스터의 아이들 (2015)」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등등등…. 최근의 논의는 이처럼 다양하고 모호한 하부 장르들을 어떻게 구분하고 정리하는지-라고 합니다.
 결국, 다큐란 어떤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데엔 실패했습니다. 우리가 즐기고 있는 수많은 영화 중 이렇게까지 논쟁적인 장르가 또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어쩌면 다큐는 연구자 전평식의 말처럼 어떤 변증법적 사후 결과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연구와 토론을 거치며 나아가는 변화무쌍함. 다큐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절대 고여 있지 않으면서, 어떤 장르보다도 넓은 채도를 가진 장르. 많은 사람들이 다큐를 사랑 하고 공부하고 제작하는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 인 것 같습니다.





참고문헌
형대조, 「다큐와 픽션의 조합, 그리고 그 경계」, 『영화연구 67』, 한국영화학회, 2016
프랑수아 니네, 조화림 박희태 역, 『다큐멘터리란 무엇인가 다큐 멘터리와 그 아류들』,예림기획 2012.
전평국, 「매체 다원화 시대 다큐멘터리 장르의 경계에 관한 연구」, 『영화연구 37』, 한국영화 학회, 2008.
문원립, 「다큐멘터리란 무엇인 가」, 『영화연구 43』, 한국영화 학회, 2010


Amor _아무 것도 모르면서. 우리들의 영화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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