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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바라보기] 《피아니스트》와 『피아노 치는 여자』

그저 행복을 비는 일, '피아니스트' _ 글 김지섭

* 영화와 그 원작에 대한 정보는 하단에 있습니다. 

  내 생각에, 괜찮은 작가라면 작품 속에 자기 자신을 남겨둘 수밖에 없는데, 그건 모든 작품이 결국 자기 자신을 정의하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기 때문이다. 설혹 부자가 가난한 자의 이야기를 쓰는 것처럼 정반대의 형태로 나타난다 할지라도 괜찮은 작가의 작품 속에는 자기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또 다른 내 생각에, 괜찮은 작품이라면 독자나 관객이 작품 속 '나'를 규정하지 못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단지 작품에 나타나 인물이 혼란스럽거나 애매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히려 누군가를 아주 오랫동안 직시했으며 그 누군가는 모든 걸 숨김없이 보여주었을 때, 그래서 모든 게 아주 명징해 보일 때 사람은 모든 평가를 포기하기 때문이다. 


    억압하는 어머니와 억압의 틈 속에서 일탈을 일삼는 여자.《피아니스트》나 그 원작 『피아노 치는 여자』는 모두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개인적 삶에서 시작한 것이다. 그녀의 삶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반영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에리카가 나오는 이 이야기는 사실 규정의 한계를 넘어서 있다. 그건 옐리네크의 자전적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 이야기 속 에리카 때문이다. 그녀는 자동차 극장에서 섹스하고 있는 남녀를 보고 오줌을 누고, 면도칼로 자해를 하며, 마조히즘적인 성행위를 꿈꾸고 있다. 영화 속 카메라가 직시하는, 그리고 소설 속 문장이 명시하는 그녀는 문제적 인물을 넘어서 있는 경우다. 

  물론 단 한 줄로 정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르한 파묵의『순수박물관』을 두고 “물품음란증이 의심되는 한 남자의 잘 풀리지 못한 사랑 이야기”라거나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두고 “집착이 분명한 한 남자의 잘 풀린 사랑 이야기”라고 말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두 가지의 경우 모두 의심할 필요도 없는 오해 내지 오독의 사례라 해야겠지만, 정말 무서운 것은 오해가 아닌 선언 그 자체에 있다. 결국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에리카를 두고 뭔가를 판단하는 일이 가능하긴 한 걸까.'

화면 밖으로, 에리카가 걸어간다

  <여기서부터 30km 직진> 마음이 표지판과 같다면 모든 게 아주 단순해질 것이다. 명시된 방향과 거리가 정확하기만 하다면 우리는 어디로든 도착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이것은 타인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눈앞에 있는 사람의 표지판을 보고 그에게 다가가는 것만큼, 내 안에는 그동안 내가 세운 표지판들이 무수할 것이다. <나는 이것을 원하고, 그것은 원하지 않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것도 결국 이러한 표지판들에 따르는 일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에리카는 오랫동안 자신이 스스로를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녀는 사랑한다고 고백해오는 월터에게 편지를 건네는데, 그 안에는 그동안 자신이 세워둔 표지판들로 가득했다. 연애편지와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요구서에 가까운 이 편지에는 사랑을 나눌 때 그가 자신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명시되어 있다. 애매하지도 모호하지도 않고, 표지판처럼.


  문제는 이 마조히즘적 요구들로 가득한 편지를 건넨 뒤 그녀가 새로운 사실을 깨닫는 데 있다. 사람의 마음은 결코 표지판처럼 명확할 수 없다는 것. 이제까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욕망들이 가짜였다는 것이다.

  에리카는 그가 이제 그녀에게 진심 어린 키스를 하기를, 그리고 때리지 않기를 소망한다. 그녀는 사랑의 행위를 수단으로 해 가능성 없어 보이는 많은 것을 제대로 돌아가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내게 사랑한다고 얘기해주고, 편지는 잊어버려.’ 그녀는 들리지 않게 부탁한다. / 303쪽

  여기서 에리카가 말하는 사랑의 행위는 가학과 탄압과 모욕의 행위다. 에리카는 말하는 와중에도 말고 상반된 소망을 품는다. 그녀는 월터를 향해 표지판 하나를 내세우면서 전혀 다른 표지판을 자기 안에서 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사람에 관한 더 정직한 묘사일 것이다. 마음과 표지판은 다를 뿐만 아니라, 차라리 두 단어는 반의어에 가깝다. 사람은 타인만 속이는 게 아니라 때로 자기 자신조차도 속이느라 결국 어디로든 도착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결말에 이르러 월터는 정말로 에리카를 묶고 때리고 모욕을 준다. 그것은 한때 그녀가 원했을지라도 지금은 결코 원하지 않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 파국은 월터와 에리카의 욕망이 엇갈린 경우라거나, 시간차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건 순전히 분노한 남성, 월터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 

…… 게다가 여성의 가치는 나이가 들수록, 그리고 지적 능력이 뛰어날수록 떨어진다. 공학도인 클레머는 모든 것을 정확하게 계산해낸다. 그는 에리카가 무덤에 들어가기 전까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다. 발터 클레머는 에리카의 주름 잡힌 얼굴과 몸을 바라볼 때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러나 피아노 수업시간에 그녀가 그에게 뭔가를 설명할 때면 마음이 무겁다. 그렇지만 마지막 합산 때는 결국 주름, 주름살, 포화지방, 새치머리, 처진 눈물주머니, 벌어진 모공, 안경, 땜질한 치아, 망가진 몸매 따위가 더 비중 있게 작용한다. / 223쪽


  월터는 에리카의 권위적 모습 앞에서 불편해하고 그녀의 늙은 육체에 비로소 마음이 가벼워지는 남자다. 어쩌면 이 이야기의 가장 문제적인 인물은 에리카가 아니라, 월터가 아니었을까? 소설과 영화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오스트리아 빈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에서는 발터이고, 영화에서는 프랑스가 배경이 되면서 월터이다. 발터에 비해 월터는 인물 스스로가 자신의 남성됨을 의식하는 게 드러나지 않아, 문제적 지점이 희석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월터가 여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소설에 비해) 가려져 있다 해도 그가 에리카를 사랑하지 않은 건 바뀌지 않는다.

  그가 편지의 내용을 이행하듯 에리카를 짓밟은 것은 무너진 남성적 자존심 때문일 수도 있고, 자신의 감정이 그녀의 성적 취향에 의해 더럽혀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자존심의 문제인지 좌절된 낭만의 문제인지, 여기서 그 이유는 중요한 게 아니다. 좋게 보든 나쁘게 보든 여하튼 그때 월터의 눈앞에 에리카는 배제된 거나 마찬가지다. 

창문들이 햇빛에 반짝인다. 그 창문들은 에리카에겐 열리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열리는 문은 아니라는 거다. 누가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데도 돌아보지 않는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돕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만, 실제로 행하진 않는다. 여자는 목을 옆으로 틀고 병든 말처럼 이를 드러낸다. 누구도 그녀 어깨에 손을 얹어주지 않고, 누구도 그녀의 짐을 덜어주지 않는다. 그녀는 힘없이 자기 어깨를 내려다본다. 칼이 이제 그녀의 심장을 찌르고 후벼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그럴 힘이 남아 있지 않다. 아무것도 향하지 않은 채 시선을 떨구더니 에리카 코후트는 치솟는 분노도 울화도 열정도 없이 자기 어깨에 칼을 꽂는다. / 379쪽

  에리카는 칼로 그를 찌르기 위해 발터/월터를 차아갔다. 하지만 소설/영화는 그녀에게 그를 찌르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그녀는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을 찌르고, 어깨에서 피를 쏟으며 걸어간다. 이것이 소설과 영화의 마지막이다. 어째서 그녀는 그가 아닌 자신을 찌르고 만 것일까. 누군가에게 이것은 추리나 해석의 영역일 것이다. 평자들은 그녀를 둘러싼 환경들에 비출 것이고, 해석자들은 그녀의 내면을 들여다볼 것이다. 나 역시 그녀의 선택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갖고 있긴 하지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미 판단을 포기해버렸다. 오히려 이 하나의 장면은 뿌리 깊게 자리잡고 말았다. 절망한 나머지 자신을 찌르는 한 여자의 모습. 이럴 때, 평자도 해석자도 아닌 독자는 그저 행복을 빌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내 생각에, 행복을 비는 일은 누군가에 대한 비난과 판단을 포기한 다음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_ 글   김지섭

영화정보

피아니스트(La Pianiste ,燑作)
드라마/프랑스/130min
감독 미카엘 하네케
출연 이자벨 위페르, 브느와 마지델

원작정보

피아노 치는 여자 (Die Klavierspielerin,熿作)
- 국내 단행본은 1997년 번역 출간.
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
번역 이병애
출판사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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