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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사이드] '1호선'

나의 개저씨, 글_ 채한영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얼마 전, 노량진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남자가 횡단보도 앞에서 자기보다 머리가 하나는 작은 여자의 멱살을 잡고 어딘가로 끌고 가고 있었다. 여자는 끌려가는 동안 소심하게 남자의 뺨을 치기는 했다. 하지만 모자를 쓴 그 남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전철역 구석으로 그녀를 몰고 갔다. 멀리서 전화를 하고 있던 나는 바로 112에 신고를 했다. 노량진 역 바로 앞에 동작경찰서가 있었지만 출동은 15분이나 걸렸고, 나는 15분 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불과 20m밖에 되지 않는 거리에서 한참을 그렇게 서 있는 와중에 여자와 몇 번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 여자의 곤혹스러움이 느껴졌다.

  남자는 손을 들었다 내려놓기도 했다. 지나가는 남자들, 여자들이 그 모습을 보았지만 다들 제 갈 길을 재촉할 뿐이었다. 결국 남자는 연행되었고, 여자는 혼자 지하철 역 앞에 남았다. 남자친구가 연행되고 홀로 남은 여자는 잠시 노량진역을 배회했다.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도 했고, 남자친구가 끌려간 방향을 쳐다보기도 했다. 그리고 맞은 편 열차를 기다리던 나를 여자는 오래 보았다. 여자의 시선에는 얼마간의 분노가 있었다. 나는 그 작은 여자의 시선이 두려워 방금 전 역을 출발했다던 열차를 끝내 타지 못 했다. 


  영화 <1호선>은 불법 운전면허학원에서 만난 유부남 사장과 알바생이 사랑하다 헤어지는 영화다. 인물 설정에서부터 짐작이 가겠지만 감독은 남자다. 게다가 도대체 어떤 점에 끌렸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가 사랑한다는 유부남은 아이들을 태우는 학원 차량에서 담배를 펴대고, 허리춤에 찬 핸드폰에, 자신의 아픈 아이에게 관심을 두지도 않을 만큼 개차반이다. 이런 유부남과의 관계가 본인들의 일터인 불법면허학원처럼 불법(당시에는, 1호선의 제작년도는 2003년도이다)이었지만, 이것을 여자가 문제라고 생각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느 날, 걸려온 수강 문의전화에 "여기 불법이고 뭐 그런 데 아니에요"라고 여자가 소리치는 이유도 그러한 연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불륜 맞았고, 불법도 맞았다. 결국 끝나고 마는 둘의 연애도 여자 혼자 1호선 전철역에서 홀로 남는 모습으로 끝이 난다. 그 모습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무책임한 남자를 욕하기도 했고, 사랑 같지도 않은 사랑에 슬퍼하는 여자의 모습을 한심스럽게 봤다고도 했다.

  모두가 일리는 있는 말이다. 본처와 애인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고는 가장 합리적이고 본인에게 무리가 가지 않는 세계로 달아난 남자나 대낮 거리 한 복판에서 여자친구의 멱살을 잡은 남자나 모두가 못난 사람들이다. 그런데 자꾸만 여자의 그 분노 어린 시선이 기억에 남는다. 그 시선을 피해 괜히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사진을 찍고 있을 무렵에야 내가 그들의 사연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1호선>에서도 감독 자신이 모르는 만큼 시퀀스와 시퀀스 사이에는 의도적인 암전이 반복된다. 단순히 시간경과를 표현하기 위해서인줄만 알았지 그게 감독이 상상할 수 있는 누군가들의 사랑에 대한 경계선일 수도 있다는 것은 몰랐다.

  죽는 여자들이 많은 세상에서 그런 모습을 보고도 신고하지 않기란 힘든 일이다. 사실 나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생각은 지금도 없다. 다만, 남자를 신고하고서 얼마간 들었던 '내가 누군가의 삶에 도움을 줬다'같은 생각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 그저 최악의 상황을 염려하여 했던 행동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대충 시간이나 때우고 돌아왔을 때, 두 사람은 역 안 카페에서 부둥켜안고 있었다. 남자가 어떤 말로 사과를 했던 그런 남자의 말을 여자가 용서했을지 모를 일이지만, 그 모습을 보고 난 곧장 노량진을 빠져 나오려 플랫폼에 섰다. 그동안 열차가 몇 번이나 스쳐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글_  채한영

영화정보

1호선
한국/25min
감독 이하
출연 유재경, 유승목, 정우혁


Amor _아무 것도 모르면서. 우리들의 영화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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