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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비평: [스케이트]

'스케이트'에 투영된 인간관과 소통의 문제_ 글 이종탄


스케이트<Skate>(1998)
드라마/한국/10min
감독 조은령

* 스포일러 있습니다


"물론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고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영화감독이 영화를 통해서 관객과 만나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내가 먼저 바뀌고 내가 먼저 사람이 되고 내가 먼저 생각을 하고 내가 먼저 느끼고 내가 먼저 사고를 해야 나의 영화가 그렇게 나오잖아요...
영화를 통해서 뭔가를 깨닫고 영화를 통해서 세상과 만나고 영화를 통해서 사람들과 만나고 영화를 통해서 뭔가를 더 배우는 과정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월간 KINO>, '감독 조은령 소개' 중


고(故) 조은령 감독은 총 세 편의 작품을 연출했다

(습작과 촬영, 다큐멘터리 작업을 제외하고 세 편이다)

<가난한 사람들>(1996)에는 거리에서 구걸하는 남자와 고아원에서 나온 소녀가, <스케이트>(1997)에는 부모 없는 소녀와 청각장애를 지닌 소년이, <生>(2000)에는 생계를 위해 낙태하는 여인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는 인물들이 처한 사회적 어려움보다도 그들 사이 소통의 어려움에 초점을 맞춘다. <가난한 사람들>의 주인공은 모두 '가난한 사람들'이지만 서로 다른 인생관으로 인해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마찬가지로 <스케이트>에서 주인공 보영과 청각장애인 소년은 소통 수단의 차이로 어려움을 겪으며, <生>의 주인공은 아예 소통할 수 있는 대상이 부재하다.


작품 속 캐릭터와 인물 간 관계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표현은 '상대적 약자'이다. 필자 나름대로 상대적 약자를 설명하자면 먼저 두 가지 전제를 세워야 한다. 첫째,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둘째, 인생에서 상처 입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이 전제를 따를 때 모든 사람은 상대적 약자에 해당하며 사회 안에서의 인간이기 이전에 개인으로서의 인간이다. 같은 사회적 환경에 처한 개개인의 성격과 경험은 모두 다르며 역설적으로 그 차이를 통해 보편성이 드러난다. <스케이트>는 위 세작품 중에서도 개인을 통한 보편적 관찰과 상대적 약자에 대한 성찰, 그리고 인간에 대한 감독의 애정을 보다 또렷이 반영한다.


나 대신 ''을 볼 때
 

영화 도입부에서 보영은 친구 경희네 집에 간다. 같이 스케이트를 타러 가자고 하지만 엄마가 집에서 공부하라고 했다며 경희는 거절한다. 약속 깰 거냐는 보영의 말에 경희는 "그럼 어떡하냐? 엄마가 못 가게 하는데"라고 말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며 문을 닫는다. "넌 좋겠다." 까매진 화면은 그 순간 문 밖에 서있는 보영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부모 없이 큰아버지와 함께 사는 보영에게 그 말은 결코 작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경희의 마지막 말이 보영에게 충격을 줄 의도로 나왔다고 보이진 않는다. 그녀는 다만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을 뿐이다. 상대방을 향한 내 의도와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내 의도가 일치하려면 서로 이해하며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엄마가 있고 엄마의 말을 들어야 하는 경희의 의도는, 엄마가 없고 엄마의 말을 들을 수 없는 보영에겐 쉽게 전해지기 어렵다.


다음 신에서 카메라는 롱 쇼트로 패닝하며 얼어붙은 강에서 노는 아이들과 스케이트를 타는 보영을 화면에 담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들에서 보영이 스케이트 타는 모습이 미디엄 쇼트-바스트 쇼트-클로즈업 쇼트로 잡히고 보영의 시선과 그녀를 담던 카메라의 시선이 일치한다. 이때부터 보영과 감독은 하나로 체화된다. 시선에 담긴 모습은 강가에 앉아 있는 한 소년이다. 뒷걸음질 하다가 보영은 엉덩방아를 찧고 이를 본 소년이 그녀를 부축한다. 그리고 소년이 묻는다. "너 이름이 뭐니?" 눈 위에 막대기로 쓴 글씨를 보고 보영은 자신의 이름을 말한다. 마치 무슨 말을 하고 있냐는 듯이, 소녀를 바라보는 소년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최보영이요." 아무말 없는 소년의 뒤를 축구공이 때린다. 꼬마에게 축구공을 건네주며 소년은 입을 열고 이를 본 보영은 그 자리에서 달아난다. 스케이트도 내팽개치고 갈 만큼 그녀를 두렵게 한 건 소년의 말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의 어눌한 말에서 느껴진 '낯섦'과 이를 통해 드러난 '장애인'이라는 존재였다. 소년은 단지 "괜찮다"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벤하민 나이스타트의 <공포의 역사>(2014)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인가를 인식하지 못할 때 두려움을 느낀다. 우발적인 사건과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등등 갑자기 발생하거나 경험하지 못한 것을 마주하는 데서 공포가 형성된다. 보영은 예상치 못한 소년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아마도, 경희의 의도치 않은 의도가 자신에게 상처를 줬듯이 소년을 피해 도망감으로써 그가 상심하게 했다. 보영이 강을 벗어나 뛰어가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소년 대신 그녀만 잡고 있다. 이해하지 못하는 대상에 대한 어색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이를 진지하게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한데 어우러진다.


상대적 약자로서 지니는 특징 중 하나는 어떤 대상에 대한 상대성이다. 보영은 부모가 없고 소년은 청각을 상실했다. 그들에겐 무엇인가가 부재하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대상이 다르기에 또한 상대적이다. 상대성은 자기 대신 타인에게 집중하도록 한다. 자신을 그와 비교하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사람의 차이를 살피느라 서로의 공통점은 무시당하고 간극은 점점 넓어진다.



출처_ 네이버 블로그 '그대의 카르마 구원하기 어렵도다'
출처_ 네이버 블로그 '그대의 카르마 구원하기 어렵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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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강 한편에선 얼음이 녹아 물이 흐르고 있다. 보영이 얼음판 위를 건너 스케이트 옆에 쪼그린다. 화면이 하얗게 변하고 잠시 후, 보영은 눈 위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쓴다. 쓰고, 지우고, 다시 쓰는 손가락을 따라가 보니 <보영>이다. "너 이름이 뭐니?" 입 밖으로 벗어난 말은 허공을 맴돌았지만 수백 번 마음에 새겼을 두 글자는 모양을 드러냈다. 소년은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그가 보영이 새긴 글자를 보는 것보다 그녀가 답변을 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강 위에 새겨진 이름은 자신을 들여다보았다는 증거이자 타자를 온전히 보게 하는 출발점이다. 외양이 아닌 본질을 바라볼 때 약자와 약자로서, 인간과 인간으로서 편견 없이 사랑할 수 있다.


영화 첫 장면에서 보영은 화면 밖에서부터 홀로 눈발을 가로질러 걸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처음 나온 방향으로 되돌아간다. 그런데 회귀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곳을 가는 듯하다. 바람만 날리던 저편에 집이 있고 곁에선 스케이트를 대신 짊어진 큰아버지가 함께 걷는다. 불협화음에서 협화음이 되는 순간이다.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 이사야 35장 5절


_글 이종탄

Amor _아무 것도 모르면서. 우리들의 영화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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