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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DROW

[정기연재] 영화 몬스터 콜 _글 김나령

고요한 죽음과 뿌리 깊은 위로
몬스터 콜 (2016)드라마, 판타지/미국, 스페인/108분/감독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출연 루이스 맥더겔, 시고니 위버, 펠리시티 존스
몬스터 콜 (2016)드라마, 판타지/미국, 스페인/108분/감독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출연 루이스 맥더겔, 시고니 위버, 펠리시티 존스



 어린 시절 그림을 즐겨 그리진 않았지만, 나무 그림은 셀 수 없이 많이 그렸다. 미술 수업시간이든, 어쩌다 참가했는지 모를 미술 대회든 크레파스로 나무만 수십 개는 그렸던 것 같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동차, 기차, 수많은 빌딩을 보며 컸지만, 10살도 먹기 전부터 나무만 그려댔던 것은 '나무' 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우직함과 단단함이 그 당시에도 조용한 위로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10여 년 전뿐만 아니라, 몇 세기 전부터 나무를 그리는 사람들은 많았다. 갑자기 늘 보았던 나무의 균형이 너무 아름다워 보여서, 나이가 들어 죽음이 가까워진 상황에 나무가 고독과 닮아 보여서 혹은 신앙의 한 상징으로, 나무는 많이 그려져 왔다. 그 수많은 그림들의 공통점을 찾기란 매우 어렵겠지만, 작품들을 보며 느껴진 것은, 시끄러움보다는 고요함 이었고, 탄생보다는 죽음이었다. 그 느낌들을 간직한 채 그림 속의 나무가 살아난 듯 등장한 영화가 있다. 바로 영화 <몬스터 콜> 이다.


좌 몬스터 콜 /우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오크 숲의 수도원>좌 몬스터 콜 /우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오크 숲의 수도원>
좌 몬스터 콜 /우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오크 숲의 수도원>

 영화 속 '몬스터' 로 등장하는 주목나무는 엄마의 죽음을 지켜 봐야만 하는 소년 '코너' 를 치유해 주기 위해 등장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몬스터 콜>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 지는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의 작품이다. 영화 속성당 앞에 서 있는 주목나무가 자아내는 분위기는 수도승의 장례 행렬을 묘사한 카스파르의 그림, '오크 숲의 수도원'과 상당히 비슷하다. 이처럼, 두 작품이 죽음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역시 닮은 지점들이 있다.

 프리드리히는 죽음이 다가올 때쯤, 나무를 그리며 사람의 뒷모 습을 함께 그려 넣었다. 인간의 고독함과 고뇌를 담았다고 알려지는데, 그 사이로 비추는 빛은 그럼에도 인간에게 한 줄기 희망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죽음은 결국 인간이 받아드려야만 하는 한계이다. 그 한계를 깨달았을 때, 인간은 고뇌에 빠지고 나약해진다. 그러나 프리드리히는 그림 속에서 그 한계를 만났을 때, 또 다른 성장의 과정이 있음을 암시한다

 마찬가지로 <몬스터 콜> 은 판타지라는 장르가 가지는 기적과 희망 대신, 현실적인 한계를 바로 직시한다. 몬스터를 뒤따라가는 코너의 이미지 처럼, 영화 속 현실을 바꾸고 싶은 코너는 몬스터를 뒤쫓고 찾는다. 그러나 몬스터로 등장하는 주목나무는 현실을 바꿔주지 않는다. 몬스터가 코너를 찾아올 때와는 다르게, 코너가 몬스터를 찾을땐 늘 빛이 비추는 시간대이다. 몬스터는 코너가 처한 현실을 변화시켜주진 않지만, 그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이끌어 내어 준다. 이는 현실을 변화시켜주는 것보다 더 큰 힘으로 코너와 관객들을 위로한다.



 삶의 단계에서 성장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현실적인 아픔과 죄책감들을 그저 받아드리면서 맞이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언제까지고 성장해야 하는 삶 속에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지치겠지만, 주목나무가 건네는 위로는 삶 어딘가에 뿌리를 내려 그늘막이 되어 줄 것이다.


글_ 김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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