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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ght

[정기연재] 영화 청춘(靑春)_ 글 김효정
그림 강재필
그림 강재필

 곽지균 감독의 <청춘>(2000作)을 처음 본 건 중학생 때였다. 새빨간 포스터가 인상적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성인인증절차는 허술하기 짝이 없어서 부모님 주민등록번호만 입력하면 웬만한 성인영화는 다볼 수 있던 때였다. 당시 사춘기 여중생이었던 나는 교복 입은 남녀(김래원, 윤지혜)가 키스하는 장면만으로도 상당히 충격을 받았는데, 내가 멋모르는 여중생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청춘>에서 키스신을 비롯한 남녀 간에 신체접촉이 상당히 노골적이고 적나라했다.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정사신과 살 위로 흐르는 땀, 콘돔과 술……. 영락없는 포르노 였다.

 야한 영화를 처음 봤던 여중생 때나 지금이나 나는 여전히 빨간색을 다룬 영화들을 특유의 유쾌함과 솔직함 때문에 좋아하고 즐겨보는 편이지만,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젠 더 이상 그 영화에서 ‘빨간색’만을 찾지 않는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득하게 영화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됐다. <청춘>은 단순히 빨간색만 다룬 영화가 아니었다. 청춘의 다채로운 색을 담은 영화라는 것을 사랑 있는 섹스사랑 없는 섹스의 차이를 알게 될 때쯤 깨달았다.


 옛날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말투와 패션, 정서 등 이질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나를 비롯한 내 주변 전부가 변하는 것이 아니듯, 이 17년 전 낡은 영화에서도 분명 어제처럼 익숙한 것들이 있는데, 바로 살아있는 등장인물들이다. 자효와 수인은 어제 만난 내 모습 같다.

영화 <청춘>은 자효와 수인 두 사람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둘은 고등학교 삼학년 때 만난 친구로 대학에 함께 진학할 뿐만 아니라 같은 집에서 생활하며 서로를 분신처럼 여기는 존재인데, 똑같은 시기에 사랑에 실패했음에도 각자가 청춘을 통과하는 방식이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 이 영화를 관람하는 포인트다. 청춘의 방황, 고독, 사랑, 섹스, 술 등자칫 고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소재들이지만 자효와 수인, 이 두 사람이 보여주는 각자의 삶이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첫 섹스에 실패한 뒤 그 후유증으로 사람들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는 자효나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 때문에 해소되지 못한 열기(熱氣)를 안고 사는 수인이나, 스무 살을 갓 넘은 이들이 방황하는 지점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사랑에 실패한 경험이한 번쯤은 있지 않던가. 모든 것에 무기력하던 때가.


<청춘> (2000)드라마, 로맨스/한국/111분/감독 곽지균/출현 김래원, 김정현
<청춘> (2000)드라마, 로맨스/한국/111분/감독 곽지균/출현 김래원, 김정현


 감독이 스스로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영화의 한 장면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도 있다. 국어 교사 정혜가 수업시간에 칠판에 판서한 서정주의 <내리는 눈발 속에서>라는 시다. 자효와 수인을 비롯한 친구들은 성장해서도 이 시를 외운다. 삶이 어지럽고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마다 혼자서, 때로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시 구절을 왼다.


괜, 찬, 타, ...... 괜, 찬, 타, ...... 괜, 찬, 타...... 수부룩이 내려오는 눈발 속에서는 까투리 매추래기 새끼들도 깃들이어 오는 소리, ......


 이들이 이 시를 욀 때마다 맘 한구석이 요동쳤다. 응어리진 마음이 풀리는 것 같기도, 어떤 벽이 허물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괜찮다는 위로를 받아본 지가 언제인지, 스스로 괜찮다고, 다 괜찮아질 거라고 읊조 려야 하는 청춘이 괴롭다.


 영화 <청춘>에서의 청춘은 얼룩져있다. 

건축학개론(2012)처럼 풋풋하지도 않고 클래식(2003)처럼 사랑의 추억에 젖을 수 있는 영화와도 거리가 멀다. 자효와 수인은 감독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해서,  <청춘>은 우리들이 겪은, 겪는, 또는 겪을 날것 그대로의 청춘의 모습, 즉 그 누구에게도 녹록지 않은 청춘의 자화상을 그려냈다. 부딪치고 깨져 상처뿐인 청춘 말이다.

  곽지균 감독은 이 <청춘>이란 영화를 만들면서 스스로에게 박수쳐 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청춘이란 놈에게 흠씬 두들겨 맞으면서도 묵묵히, 강인하게 잘 견뎌 마침내 그 시기를 통과해낸 자신을 안아주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나의 청춘만 힘겹고 생채기가 난 것이 아니라는 위안을 이들을 보고 얻는다.


  결말이 주는 메시지는 받아들이기 나름이겠지만 내게는 자효가 비로소 움츠렸던 날개를 털며 날갯짓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여전히 아프고 두려울지라도 이젠 더이상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맞서기로한 것이다. 그간 거부하고 외면하기만 했던 사랑(배두나)을 찾아가는 장면이 그의 용기 있고 당찬 첫 날갯짓이라는 점에서 <청춘>을 그렇게 뻔하디뻔한 멜로영화나 단순히 지나간 감성이라고 폄하할 수는 없다. 

자효의 날갯짓은 우리의 날갯짓이기도 하니까. 나의 날갯짓이기도 하니까.

나는 2017년 청춘의 한가운데 서서 영화 <청춘>을 뒤늦게 옹호한다.* 

<청춘>은 여전히 야한 영화이기만 한가? 오래전 <청춘>을 보고 단순히 포르노에 불과하다 낙인찍은 이들도 이쯤에서 재평가해보는 건어떨까.


<청춘>은 청춘의 한가운데서 스스로 그 시절을 지독하게 앓아야만 미스터리가 풀리는 영화로, 시간에 몸을 맡기고 그저 흘러갔을 뿐인데 마침내 도달한 그 곳에 답이 기다리고 있었다.


_글 김효정

<END>


*출처 네이버 영화, 기사제공 film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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