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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beside 시로 지은 집

글_ 채한영


시로 지은 집

일러스트_ 강재필 
일러스트_ 강재필 
케빈은 거리에서 시를 파는 소년이다. 

사람들의 일상이 즐비한거리에서 소년은 검정 비닐봉지에 들어있는 읽을거리를 낭독해
주며 푼돈을 받는다. 150페소, 사람들의 집 문간에 서서 짧은 이야기로 소년이 받는 돈의 액수다. ‘오늘의 시’ 한 편에 150페소라며 외치는 케빈에게 시를 읽는 일이란 운이 좋으면 하루에 몇 번, 안 좋으면 한 번인 일이라 엄마는 살림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지 않는다며 아이를 늘 타박한다. 엄마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바쁜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시 읽기는 관심 밖의 일이다. 그럼에도 케빈은 장사를 위해 버려진 책들을 찾아 헤맨다.


자식들을 모두 타지로 보내고 홀로 남은 노파 아멜리아는 소년의 유일한 친구이다. 그녀는 최근 재산세로 2만 페소를 고지받았다. 그 돈을 내지 않으면 아멜리아는 집에서 쫓겨나야 한다. 소년이 몇 번 더 시를 읽어야 2만 페소의 세금을 친구의 집을 대신 지켜줄 수 있을까. 근처 서점에서 ‘그린베레’를 같이 읽고 돌아오는 길에 들린 어느 언덕 위의 대화는 그래서 슬프다. 온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사람들의 살림살이에 대해서 아멜
리아는 말한다.


"저기는 부자들이 사는 곳이야. 그런데 여기도 나쁘지 않아. 여기서는 가난한 이들도 계란을 2개씩 먹을 수 있잖아"


계란 2개로 가난을 긍정하는 마음씨를 가진 아멜리아가 시를 읽는 소년과 친구가 될 수 있던 이유도, 그녀가 집에서 쫓겨나야 하는 것도 바로 저 선량한 마음씨일 터. 그러나 선량한 마음을 세금으로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시를 팔고 돌아온 소년의 목소리에 흙으로 지어진 아멜리아의 집에서 그녀는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


<시를 파는 소년> 2015作, 유디드 카브치
<시를 파는 소년> 2015作, 유디드 카브치

소년과 아멜리아가 언덕 위에서 바라본 곳은 아마도 시詩의 반대편일 것이다. 그곳은 시 대신 고지서를 읽으며 적어도 재산세로 2만 페소는 거뜬히 내야만 하는 곳이다. 그곳은 시로는 집을 지킬 수 없고 친구와는 헤어져야 하며 맨발의 개들은 집 밖으로 쫓겨나야 하는 곳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이 발붙이며 살아가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반대로 두 사람이 서 있던 언덕은 시의 세계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곳에는 우정이 있고 모험이 있으며 지나간 것들에 대한 회고가 있다. 소년은 자신보다 몇십 년은 앞서 살아온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차피 돌아가야 할 반대편의 세계를 내려다본다. 처마가 가라앉아 가는 마을의 집들. 누추한 삶들을 누일 곳이어도 가난한 이들도 계란 2개 정도는 먹을 수 있을 만큼은 궁핍하지 않은 곳. 두 사람은 짧은 대화를 나누고 언덕을 내려온다.



유디드 카브치 감독의 이 짧은 단편 다큐멘터리는 한 소년이 친구와 이별하는 모습을 그려낸 작품이다. 영화 속 소년이 파는 시와 마찬가지로 이 이야기에는 공백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시를 읽는 것처럼 장면과 장면 사이 속을 계속 더듬으며 생각해봐야 한다. 이것에 대한 많은 주석이 존재할 수 있겠지만, 고지서의 세금을 대신 내줄 수 없던 이 소년의 마지막 모습, 홀로 앉아 시를 낭송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일찍이 장 아누이
가 ‘이야기’에 대해 말한 전언. ‘허구는 삶에 형식을 부여한다’라는 말로 소년을 위로할 수 있을지 모른다.


아누이가 말한 형식은 곧 누추하고 바래지기 쉬운 삶을 잠시나마 누일 공간이다. 그 허구는 사실이 아닐지라도 결과적으로 삶을 지탱해주며 혼란스러운 삶에 질서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야기에 대한 아누이의 아름다운 이 정의는 ‘시 읽기의 행위’를 소년에게 집을 잃고 사라진 친구에 대한 기억을 지킬 수 있는 따뜻한 근거로 만들어 준다. 물론 앞으로도 고지서들은 일상이란 조류를 타고 밀려가고 쓸려가기를 반복하겠지만 친구를 지키지 못한 시의 언덕 아래에서 소년은 계속 ‘무엇이든’ 읽어 나갈 것이다.


글_ 채한영



Amor _아무 것도 모르면서. 우리들의 영화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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