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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 EIDF 대담

다큐에 대해 1도 모르는 사람들이 모였다, 아구지 外 2인

TALK

다큐에 대해 1도 모르는 사람들이 모였다


EIDF

대담자


아구지 모르는 게 많습니다.
실존 문제 때문에 대학에 왔으나
자본주의의 비열함만 매일 배우며 살아갑니다.
가난한 대학생. 후원문의는 아모르로 주세요.

소나기 글과 영화는 제 삶에 예고 없이 찾아왔습니다.
흠뻑 젖은 채로 지금까지 잘 붙들며 살고 있습니다.
잘하고 싶습니다. 잘 해보겠습니다.

칼국수 정신분석과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스페인어 과외도 받고 있습니다.
이름은 안토니오로 지었습니다. 이탈리아식이지만,
그렇습니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에서 따왔습니다.




TODAY MOVIE

우리 사랑 이야기 <The grown ups>2016作
브라더스 <Brothers>2015作
히말라야의 시지프스: 네팔 포터 이야기 <25-dollar Sisyphus: The Story of Himalayan Porters>2017作


아구지 : <브라더스> <우리 사랑 이야기> <히말라야의 시지프스: 네팔 포터 이야기(이하 시지프스)>, 이 세 편의 영화 다들 어떠셨는지?
소나기 : 아주 재밌었습니다.(웃음)

아구지 : 먼저 <브라더스>부터 천천히 이야기해볼까?


브라더스<Brothers> 2015作
브라더스 2015作

칼국수 : 이 영화를 텍스트로 내가 골랐는데 세 편을 다 보고 나서는 ‘아 잘못 골랐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나기 : 왜? 좋았는데….
칼국수 : 응, 영화 자체는 좋았는데. 이 세 영화 모두 오늘날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진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걸 생각하고 봤을 때, 브라더스의 고민은 다른 것들에 비해 너무 가볍지 않은가 싶어서…. 물론, <브라더스>는 좋은 영화이다. 

다만 이 세 편을 연달아 봤을 때 그런 느낌이 들었다는 거지. <브라더스>는 생존에 대한 고민 혹은 인권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그런 것들이 모두 충족된 이후 나오는 삶에 대한 커다란 고민이지 않나.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아픈 엄마와 포터일을 하는 <시지프스>의 소남이에게 그런 고민은 사치스러운 일일 것이다.


아구지 : 그럼 칼국수는 모든 다큐가 사회적이고 공적인 문제의식을 담아야한다고 생각 하는 건가?
칼국수 : 아, 그런 건 아니고. 다큐가 어떠해야 한다는 생각까지는 아니다. 단지, 이게 실제로 이어지는 삶이라는 생각을 하고 보니까….
소나기 : 이 세 편을 연달아 봤으니 그런 기분이 들었을 수도. 그냥 독립된 작품으로 봤을  때 <브라더스>는 정말 좋은 다큐이다.
칼국수 : 그렇지. 세 편을 연달아서 보니까 마치 <브라더스>의 형제들을 <시지프스>의 공간으로 가져다 놓는 것 같은 느낌이 든 거다. 그 형제들은 소남이가 부러워 마지않는 북유럽의 잘 사는 백인들이지 않나. 왠지 모르게 계속 그 두 삶이 비교되 어서 <시지프스>가 더욱 슬프게 느껴지고….
소나기 : <브라더스>를 먼저 보고 <시지프스>를 보셨구나? 나는 반대로 <시지프스>를 보고 오열한 다음 날 밤 <브라더스>를 접했다. 그랬더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고 좋았다 (웃음)


아구지 : (웃음) 왜 그랬을까?
소나기 : 브라더스의 ‘시선’이 좋았다. 촬영자가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 그렇게 다큐라는 사실을 계속 드러내는 한편, 굉장히 극적인 요소들을 함께 갖추고 있다는 게 정말 재밌고 신선했다. <브라더스>는 낯설고 매력적인 다큐이다. 원래 다큐를   잘 안 보기도 했지만, 평소 접하던 「다큐 3일」 같은 다큐와는 전혀 달랐다.

아구지 : 그래. <브라더스>라는 영화, 굉장히 특이하다. 그런데, 이 특이한 영화가 왜 만들어졌는지 궁금했던 사람은 없는가? 나는 무척 궁금했다. 촬영자이자 감독   인 엄마는 왜 아들들을 찍어야 했을까?
칼국수 : 어머니로서의 자신을 기록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아들들에 초점이 맞춰진 것 같지만 그 사이로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등   장한다. 

그리고 동시에 엄마는, ‘삶이 이어지는 일’을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자신의 근원을 알기 위해서는 두 세대를 거쳐야 한다”는 영화 속 말처럼, 어머니는 아들이 자라나는 걸 지켜보고 또 다시 아들이 그 아이가 자라나는 걸 지켜보는 삶의 순환 속에서 인간은 삶 그 자체를 바라보게 되는 거니까.
소나기 : 감독이 이 영화를 왜 찍었나? 하는 질문에 대해선 이미 영화 안에서 대답이 되어있지 않은가? 아들이 영화 중반쯤 말한다. “엄마가 죽고 나면 우리들이 보라고요.”


아구지 : 나는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다. 내 경우를 들어 말하자면,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심지어는 스무 살 때의 기억조차 희미한데.    나의 근원을 아는 일 즉, 내가 어떻게 살고 어떤 사람으로 성장해가고 있는지를 기억하는 일”은 단순 기록을 넘어 그 순간의 분위기- 나를 울렸던 것들- 내가 사랑하던 것들 그때의 공기까지도 모두 담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기록이라는 게, 이렇게 꾸준한 그리고 아름다운 노력이 가해지지 않는 이상 가능할 리가 없다. 소중한 기억들은 대부분 남지 않고 빠르게 사라져버린다. 그런 이유에서, 내가 느끼기에는 이 영화가 아이들에게 엄마가 주는 일종의 선물같다고 생각했다. 이 아이들을 위한 작업일 거라고. 아이들을 대신해, 그들 삶을 기록하는 일.


chapter1. 기억하고자 하는 욕망


칼국수 : 그런 것도 같다. 거기엔 물론 나를 기록하는 일을 포함해서. 영화는 계속 기억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구지 : 기억에 대한 욕망이 사실 영화를 탄생케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소나기 : 근데, 그게 너무 강박적이지 않았나? 나는 형제에게 엄마가 첫 키스에 관해 묻는 장면이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아이들은 안 불편할까?
칼국수 : 그래서, 영화 중간중간 애들이 거부하는 게 나오지 않나. 어떻게 보면 아이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엄마의 야망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아닐까. (웃음)
아구지 : 좋은 작품을 만들고자하는 아주 좋은 야망.
소나기 : 기억에 대한 집착은 갑자기 시작된 게 아닌 듯하다. 어머니가 어렸을 때, 할아 버지가 고래 잡는 모습을 찍었다고 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아구지 : 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그런 거다. 자기가 간직하고 싶었던 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대신하여 아이들의 어린 시절과 늙어가는 나 자 신을 <기억>의 형태로 기록한 것이다.
소나기 : 고래 잡는 모습이 담긴 영상에 조금 나온 자기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봤다는 서술에서부터 그게 드러난다.

아구지 : 나는 어머니에 공감한다. 나는 어린 시절이 어렴풋하게만 남아 있고, 그게 무척 아쉽다.
칼국수 : 실제로 기억력을 높이는 방법이 사진을 찍는 거라고 한다. 천재들이 기억하는 방법도 시각화해서 입력하는 거라고.
소나기 : 나는 나에 대한 건 기억이 나는데.
아구지 : 나는 이상하게 풍경이 하나도 안 남는다. 그런 점에서 <브라더스>는 기억에 관 한 영화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소나기 : 기억과 시간. 그런데 이 작품이 만약 아이들에게 주는 선물(앞서 아구지가 이 야기한‘선물’과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같은 거라면- 작품은 분명한 메시지를 갖게 된다. 작품은 마치 엄마의 전언 같다. 아들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는…
칼국수 : 그래서 나는 이게 단순 기록이 아니라고 본다. 이건 하나의 창작품이다. 현실을 정교하게 편집해 어떤‘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구지 : 맞아. 어떻게 보면 이건 영화의 가장 원형적인 모습이다. 나는 이 작품을 극영화라고 해도 될 거 같다.
혹시 <트리 오브 라이프>를 봤는가? 두 영화가 굉장히 유사하다. <트리 오브 라이프>는 소년의 독백을 통해 성장의 과정을 아주 섬세한 감정의 흔들림까지도 놓치지 않고 그려낸다. 누구나의 유년을 보는 듯한. 아주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묘사로.
다만 다른 지점은 <트리 오브 라이프>에서는 이미 성인이 된 남자의 모습 속에 회상이 삽입되며 ‘극’임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 뺀다면 이 두 영화는 거의 같은 영화라고 해도 지장이 없다.



chapter 2. 지워지는 존재들을 기록하는 일


우리 사랑 이야기 <The grown ups> 2016作
우리 사랑 이야기 2016作

아구지 : <우리 사랑 이야기>는 어떻게 봤는가? 다운장애 커플이 결혼을 결심하고 준비 해가는 과정의 이야기이다. 결국, 반대에 부딪혀 좌절되지마는.
소나기 : 댓글들을 보니까, 보호와 자유의지 사이 갈등에 대한 고민들이 많이 보이더라.
아구지 : 상당히 선명한 편이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영화를 시작했다”라 는 걸 영화 초반부터 주장하며 들어간다.
칼국수 : 결혼에 대한 에피소드도 있지만,‘리타’라는 인물의 독립을 위한 어떤 투쟁기도 상당히 중요한 에피소드이다. 결국 ‘결혼’이라는 소재는 하나의 곁가지이고, “그 사람들이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문제”에 대한 영화인 것 같다.
소나기 : 학교에서 계속해 외는 구호도 그거지 않나. “나는 자유로운 성인이다”였던가?

아구지 : 그런데, 나는 영화를 보며 한 가지 갸웃했던 점이 뭐냐면, 인물들의 입을 통해   계속 “나는 독립을 하고 싶지만, 주변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동시에 카메라가 우스꽝스럽고 위태로운 그들 모습을 잡아낸다는 것이었다.
소나기 : 아, 웃긴 춤 추는 장면?
아구지 : 그건 오히려 건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다고 느꼈던 건 그걸 보고 웃는 비장애인들의 얼굴을 찍는 것이었다. 그들을 향한 비장애인들의 취급을 편집 없이 적나라하게 싣는다.
칼국수 : 그런데 비장애인들이 잘 안 나오지 않나?

아구지 : 가끔씩 나온다. 공원에 앉아 있는 사람을 괜히 건드리고 가는 비장애인의 모습이나 주인공 둘이 춤추느라 난리가 났는데 뒤에서 웃는 할머니들의 모습 같은…. 나는 영화를 보며 그런 것들이 계속 밟히더라. 분명히 환자들의 이야기만 하려고 했다면 그런 부분들을 통제할 수 있었을 텐데. 그것들을 굳이 가감 없이 드러냈다-라는 게 어딘가 의도된 바가 있지 않을까?
칼국수 : 그럼 이 영화는 단순히“이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선언하는 영화   는 아닌가 보다. 

실제로 그 (결혼을 반대하는) 어머니의 생각이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다. 그런데 또 그렇다고 그 사람들 스스로 느끼는 자유에의 갈망을 무시할 수도 없고. 좀 문제적인 부분인 것 같다. 어떤 한 편을 선택해서 맞다 그르다, 판단할 수 없는.
아구지 : 굉장히 큰 질문을 하고 있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소나기 : 근데 나는 다르게 느낀 게, 이 영화가 오히려“이 사람들의 자유를 보장하라”라 는 쪽으로 지나치게 편향되어있다고 생각해서 불만이었다. 영화를 보면, 부모님이 완전히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연애는 허락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학교에서도 둘만의 공간을 만들어 준다. 

이게 완전한 자유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것을 마냥 “억압”이라 부르기엔 또 그렇다. 난 다큐가 호소하는 자유라는 것이 참 뭐랄까, 균형이 없다고 느꼈다. 어떤 보호마저도 억압이나 자유의 박탈로 호도해버린다고. 실제로 다큐에서 비장애인들의 시선을 거의 안 다룬다. 어머니의 입장이랄까, 그런 것들을.
아구지 : 진짜 신기하네. 어떻게 이렇게 다른 생각을.


칼국수 : 나는 이 영화에 대해 어떻게 느끼냐면, 우리가 한 번도 제대로 바라봐주지 않던 장소로 카메라를 가져다 놓은 것 같다. 그러니까, 아까 말한- 자유의지를 가져야 한다, 결혼을 시켜야 한다, 보호해야 한다, 이런 문제를 떠나서, 가장 궁극적으로는,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걸 조명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나는 이제까지 다운 증후군 사람들을 한없이 어리고 모자란,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니 그들이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다. 동등한 자유를 꿈꾸고 욕망을 가지는 같은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chpater.3 프레임 너머의 삶, 시지프스


히말라야의 시지프스: 네팔 포터이야기 2017作
히말라야의 시지프스: 네팔 포터이야기 2017作

아구지 : 이제 이야기를 넘어가 보자. <시지프스>는 어떻게 보셨는지.
칼국수 : 영화를 보기 전에는 제목이 굉장히 거창하다고 느꼈다. 무슨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거지? 그런데 보고 나니,‘시지프스’라는 단어조차도 이 앞에서는, 이 육체적 노동- 삶 앞에서는, 가볍다고 느껴졌다. 그 사변적 단어로는 이 치열한 삶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고. 어떤 철학적 탐구도 불필요한 있는 그대로의 삶.
소나기 : 삶.
칼국수 : 어, 삶.
아구지 : 그런 이야기인가? 누군가에게는 당장 오늘 나의 이야기인데, 어떤 주제로서 객관화하는 게 가볍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칼국수 :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소나기 : 단지 일어나고 있는 삶에 우리들이 이런 식으로 의미부여를 해도 될까 하는 거?
칼국수 : <시지프스>라는 말보다, 더 거대한 삶이었으니까.

소나기 : 응. 나도 여기에 의미를 더할 수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구지 : 나는 이런 감상이 연출자의 의도와 연결이 된다고 느꼈다. 이 영화가 굉장히                     슬프다.
칼국수 : 엄마 혼자 울 때 나도 같이 울었다.
아구지 : 응. 그런데 그런 장면들을 전혀 비극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드라마적 연출이 하나도 없다. 보통은 그런 장면에서 깔려야 하는 음악이 정해져 있기 마련인데, 유일하게 음악적 요소가 들어가는 장면이 딱 히말라야 산맥을 배경으로 대자연의 기운이 느껴지는 음악이 삽입되는 것 뿐.

또, 영화는 일부러 어떤 편집, 극화되는 과정 거쳐서 날카롭고 강렬한 문제제기를 하지도 않는다. 예를 들어 외국인 관광객들을 보며 소남이가 "나도 저렇게 여행 다니며 살고 싶다" 라는 이야기하면서 그들에게 구걸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진짜 그저 그냥 담는 수준에서만 사용한다. 한 마디로, 연출의 방향이 굉장히 객관적이다. 마치 하나님의 시선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그래서 이 다큐가 의도 하는바 자체가 이 사람들의 불행을 보여주고자 하는 게 아니라, 거대한 삶의 총체 중 어떤 하나- 하나의 단편을 담아낸다는 데 있다고 느껴졌다.
칼국수 : 그래. 정말로 매일 매일 일어나고 있는 "삶" 이라는 느낌이 강렬했다.


소나기 : 나는 원래 올해 겨울에 그곳에 트레킹을 가고 싶었다. 그래서 이 영화를 고른 거였는데,(웃음) 그 전에 갔다 온 사람들이 짐이 굉장히 많아서 무조건 포터를 고용해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그래서 서치를 하다 사진을 봤는데 자기 두 배만한 짐을 지고 있는 거다. 그래서 내가 미안하지 않아요? 하고 물었더니 다녀오신 분 말은 그게 그 사람들에게는 일이다. 라고.


아구지 : 나 갑자기 다른 얘기 좀 할게. 글쎄, 사실 이 말이 도덕적으로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포터의 존재에 대해서 나는 아름답다고 느낀다. 산악지대에서만 존재하는 문화니까. 그 포터라는 직업을 없애고 보다 편리한 수단들을 통해 짐을 옮기는 것보다 이게 훨씬 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지금만 존재할지도 모르는 히말라야의 문화 중 하나니까.
소나기 : 현대가 침범하지 못하는 영역이라는 경외감이 들긴 했다.
아구지 :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보면, 그런 고민이 든다. 우리가 이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하는 걸까? 하는. <우리 사랑 이야기>랑 비슷한 질문이기도 한데, 이게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문제인가? 어머니의 눈물에는 나도 가슴이 아프지만, 우리가 저 사람들을 위해 돈을 모아서 수혜를 베풀고, 하는 게 옳은 건가?
소나기 : 음 그렇지. 그 장면. 산을 다 올라서 받은 돈으로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사주는 장면을 보고 확실히 그런 생각을 하긴 했다.
칼국수 : 그들의 삶을 완전한 불행으로 바라보지는 않아야 한다고?
소나기 : 응응.
아구지 : 그래서, 일부로 그런 걸 의도하고 연출한 거 같은데. 만약에 다른 방향으로 그들의 불행을 극화시켜 과장했다면, 상단 070으로 시작하는 전화번호 뜨고, 그랬다면! 그런 거- 그런 입장이 굉장히 내가 봤을 때는 침략적이다.
칼국수 : 오만하다?
아구지 : 그치. 어떻게 보면, 제목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봤는데, 그냥 포터라는 직업 특성(무거운 등짐을 지고 살아가야 한다는)을 비유적으로 붙인 것 같다. 가져다 붙인. 그러니까, 사실 한국에 있건 동유럽에 있건 북한이건 프랑스건, 누구나 그런 짐 하나쯤은 가지고 살 거든.
칼국수 : 매일 매일 일어나고 살아가는.

아구지 : 그렇지. 우리가 소남이 어머니랑 소남이랑 썩 다를 것이 있는가? 물론, 분명 몸의 불편에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것이다.
칼국수 : 어... 우리 부모님도 장사를 하시는데, 항상 하시는 말씀이 “무릎 아프다”이다. 나는 그런 부분에서 소남이에게 이입을 하게 되더라. 우리 엄마 생각이 나서. 그러니까, 어디서든- 어떤 하루든 모두 힘들 거다. 또 우리가 동정심을 가질 게 아닌 게, 그 안에 등장인물들이 너무나 살아있고, 살아가고, 사랑한다.

소나기 : 그런데 관광객이 등장하는 장면! 물론, 그냥 자연스러운 히말라야의 일상 중에하나겠지만. 같은 프레임 안에서 너무나도 극과 극으로 갈리는 두 삶이 부딪혀 굉장히 슬펐다.
아구지 : 이 관광객 장면이 보여주고자 하는바는,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던 것 같다. 오늘날 세계의 일그러진 단면? 유럽 사람들만 잘 사는 거다. 어떤 나라는 몹시 가난하고…. 나는, 포터들도 유럽에 가서 관광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까 말한 그 관광객 장면은 세계의 부가 기울어져 있음을 너무나 단적으로 보여준다. 감독이 아무리 객관적으로 영상을 담았다고는 하지만, 이걸 지나칠 수는 없다. 특히 제3세계 아이들에 대해. 그 아이들 역시 많은 부분 지워진 존재들이니까.
소나기 : 응, 소남이 학교 가야 하는데 돈 벌고 있고. 네팔 안에서도 사회적 계층이 있는데, 포터는 그중에서도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인 것 같다.
아구지 : 그래. 이 기울임에 대해 쿠바 혁명 때 카스트로가 법정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유럽 어느 중산층 동네의 어린아이의 죽음에는 온 세계와 미디어가 애도하면서, 제3세계 아이들이 매 순간 무참히 학대 당하고 죽었다는 일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말하지 않고, 애도하지 않는다고.
칼국수 : 그래. 세계의 스탠다드는 서구 중산층, 백인, 남자다.


아구지 : 소남이의 불행을 우리가 침략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도와줄 수 있는 건, 거기에 기차를 놔 주고, 케이블을 설치하고 이런 문제가 아니라, 결국 소남이도 포터 일로 어머니랑 같이 드레스덴 여행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런 거다.
소나기 : 정말 좋은 방법은, 배워야 할 나이에 있는 아이들이 교육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아닐까.
칼국수 : 맞다. 선택을 늘려주는 거. 그게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선택할 수 있는 환경.

아구지 : 소남이가 엄마 때문에 울지 않았으면 한다. 이야기가 많이 샌 거 같다. 지송
소나기 : 갠츄. 이게 또 이야기를 하다 생각난 건데, 이 이야기를 보고 공감하고 고민하는 게 우리가 또 백인이 아니고 그들과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니까 하는 거지. 누군가는 이런 거에 대해 전혀 문제의식을 못 느낄 수도 있다.
칼국수 : 글을 쓰고 다큐를 만드는 일들은 결국 이런 문제의식, 고민들을 공유하려는 작                  은 움직임이겠지.


chapter.4 다큐, 도대체 뭘까?


시지프스, 네팔 포터 이야기 2017作
시지프스, 네팔 포터 이야기 2017作

아구지 : 이제 슬슬 마무리해볼까? 다큐 영화제나 다큐 자체에 대한 이야기도 좀 해보자.
칼국수 : 음...이번에 텍스트로 선정한 EIDF 영화제.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는데, 플랫폼이 굉장히 좋더라. 아카이빙 작업이 상당히 잘 되어 있고... 접근성 좋다!
아구지 : 영화제에 대해서는 서비스가 좋다, 라는 말뿐? (침묵) 서로 별로 할 말이 없나 보네. 평소에 다큐 잘 보시나? 최근에 본 건?
칼국수 : 사라 폴리 감독의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2014作)랑, 몇 년 전 EIDF에 나온 이스라엘 여군들에 대한 이야기. 감독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전쟁이라는 상황의 참혹함과 여군의 삶을 보여주는. 평화와 여성 인권을 다룬 내용이었던 것 같다.
아구지 : 허걱, 많이 보신다. 다 모르는 다큐들이라 뭐라 할 말이 없네. 소나기도 다큐를 즐겨 보는가?
소나기 : 난…. 사실 잘…. 다큐 3일이나 극한 직업 같은 거 정도.
아구지 : 아 최불암 아저씨랑 한식 기행 다니시는 정도구나.

소나기 : 그치


아구지 : 이렇게 이야기하다가 느낀 건데, 다큐의 결이 굉장히 다양하다. 지평이 아주 넓은 장르! “다큐는 뭐다”라고 이야기하기 힘들 만큼 다양한 다큐들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큐! 했을 때 생각나는 이미지들은 분명 있다.
소나기 : 객관성?
아구지 : 사실을 찍는다는 거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 같나?
칼국수 : 어 근데, 다큐가 사실을 찍는다고 말하기는 애매하지 않나? 극도 사실을 기반으로 만들어지곤 하고, 또 사실을 기반으로 해 재연의 방법이 들어가는 다큐도 있다. 연출이 적고 많고의 차이만 있다고 본다… (깨달음에 모두 침묵) 

아, 이거 매번 다큐에 대한 대담을 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장르다. 콘텐츠화해서 두 사람 정도 세 작품씩 매달….


소나기 : 그래. 다큐가 좋은 게, 이야기가 엄청 튄다. 하나의 장르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이처럼 다양할 수 있을까?
아구지 : 다큐라는 장르가 품는 폭이 엄청 넓다. 그런 의미에서 칼국수가 다큐 콘텐츠 하나 만들어서 맡아 줘라.
칼국수 : 허허
소나기 : 칼국수가 하는 거로~
칼국수 : 아, 아니 그건 아니고
소나기 : 좋다 좋아.


아구지 : 나는 사실 다큐 진짜 잘 안 본다. 잠 안 올 때 유투브 들어가서 우주 다큐 보다 잠드는 게 다이다. 내가 최근에 본 다큐 뭐가 있을까… <위로 공단>(2014作)?
소나기 : <님아 내 강을 건너지 마오>(2014作), <울지마 톤즈>(2010作)
아구지 : 전부 안 봤어. (웃음) 근데 방금 말한 거나 기타 최근 개봉하는 한국 다큐들 보다 보면 전부 좀 사회 고발성 다큐 아니면 TV 매체에서 보여주는 휴먼 자연 다큐- 이런 쪽으로만 몰려 있는 것 같다. <브라더스> 같은 실험은 좀처럼 없는 느낌?
소나기 : 그런가? 원체 낯선 장르라 나는 뭐라 할 얘기가 없다.


아구지 : 에잇! 서로 아는 게 없으니 진행이 안 되네! 허탈하다! 문제 제기 좀 하고 싶었는데! 그냥 마지막 질문 하면서 마무리하겠다. 어떤 것들이 인상 깊었는가? 대담 후기도 좋다!


소나기 : 일단 재미있었다. 다양한 작품을 접해서 좋았고, 나아가 대담자들과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다큐와 좀 친해진 것 같은데.
아구지 : 어…. 나는 어떤 순간들이 확 와 닿는 순간에 사진을 찍는 버릇이 있다. 뭐냐면, 너무 행복한 거다. 또는 너무 감동적인 순간이다. 막 바람이 불고, 내가 사랑하는 애인이 내 앞에 있고. 그럴 때 폰카로 찰칵하곤 하는데,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보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게 극영화에 너무 우호적인 말 같은데, <브라더스>의 방식이야말로 가장 적절하게 사실을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광학적 기록 이상의 사실을 담아내는“연출" 이 있다.“연출”을 통해 눈에 보이는 사실 이상의 무언가를 담는다고, 그거야말로 진실이라고. 내가 느낀 점은 그랬다.


칼국수 : 그런데, 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그것이 “진실”보단 연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결국에는 그런 경험- 느낌들이 전부 다 굉장히 주관적이라는 거다.  그리고 그게 실재를 능가한다. 실재의 감정이 아니라, 그에 무언가 더 보태진 형태로 남는다. 그래서 철저히 연출은 연출일 뿐이고, 그게 진실일 수는 없다고 보는 입장이다.
아구지 : 헉…. 너무 설득력 있어서 말을 잃었다.
소나기 : 근데, 그런 건 있지. 빠르게 자라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아쉬움과     사랑은 분명 전해진다. 그건 연출되어서 그렇게 다가오는 게 아니라, 보는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거다.
칼국수 : 그건 그래.


아구지 : 칼국수도 대담 후기라던가, 느낀 점 같은 거 있는가?
칼국수 : 대담 후기? 어…. 오늘 이야기 나눈 영화들, 다큐멘터리로 구분되긴 하지만 너   무도 다른 세 편이었다. 이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이야기하니 새로운 영화 한                     편을 본 기분이었고…. 제게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웃음) 너무 짧은가?
아구지 : …그냥 정리하고 밥 먹으러 가자. 무진장 배고프다.
소나기 : 나도.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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