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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Negative opinion

그 남자의 기억법 _채한영



  오래전 일이다. 조선에서 강제 징용된 이들을 숨겨주던 남자가 있었다. 남자의 직업은 신사를 지키는 신관. 그와 아내는 수용소에서 도망친 조선인들을 치료해주고 야밤에 도망도 갈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행동들을 알게 된 경찰은 그를 모진 고문 끝에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간밤에 잠자듯 죽은 그의 시체를 새벽 내내 태워 유골을 수습한 건 그의 장남 '하야시 에이다이'였다.


  유골을 수습하던 날을 여전히 기억하는 노인 하야시는 평생을 아버지가 도와주었던 조선인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행적을 기록하며 살아왔다. 그는 말한다. '역사는 대부분 국가권력자들의 기록'이기에 조선인들과 같이 억울하게 살다 간 원혼들을 위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 당신 필생의 사명이라고. 폐암 말기의 몸으로 자꾸만 힘이 없어지는 만년필을 테이프를 발라가며 그는 계속 그 사명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의 일대기를 바라보면 '기억하는 것'의 숙명적인 노곤함이 느껴진다. 이미 오래전 일인 것들. 추워서 속옷을 덧대 입었을 뿐인데, 그것이 도망가기 위한 것이 아니냐며 의심한 일본인 관리자에게 반나절 동안 두들겨 맞아 죽은 조선인의 이야기나 탄광이 매몰되어 막장에서 신음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죽은 이들의 이야기를 할 때의 하야시의 모습은 고단하여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류승완 감독도 군함도를 만들 당시 하야시 에이다이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한다. 군함도는 그런 의미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자식들이 만든 기록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철저한 고증에 자신 있다는 류승완 감독의 말에도 불구하고 스크린 독과점의 문제나 한국과 일본 양 진영에서 친일과 국뽕 논란이 동시에 일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처음 상영관 수가 정해졌을 당시 스스로 '좆됐다'고 생각했다 한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으로 자신의 작품이 폄하 당하고 있다고 믿는 것은 감독 스스로가 하는 착각처럼 들린다. 하야시의 50여 권에 이르는 저작들이 호소력을 가졌던 것은 기록으로 충실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재구성하는 창작자로서의 역량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철저한 탐사 후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그의 작업은 그래서 필연적으로 르포르타주 형식을 갖는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필연적으로 작가 스스로에게도 고통을 준다. 기억은 작가의 삶 내부에서 재구성되고, 작가로 하여금 인물들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비록 이것이 작가의 일방적인 착각이라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작가는 기억으로 이어진 또 한 명의 유족이 된다. 하야시는 그래서 그들의 아픔을 이야기할 때 종종 눈물 흘렸는지도 모른다. 펜을 넘어서 몸뚱이로 기억하는 이의 모습이다. 



<군함도>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군함도>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군함도 역시 이미지를 구성하는 영화감독으로서의 역량의 담겨 있긴 하다. 가령 촛불을 든 조선인들의 모습과 탈출을 향해 가는 군중들을 담기 위한 촬영방식은 이미 수많은 영화에서 입증한 류승완 감독 본연의 능력을 의심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소지섭과 송중기 그리고 황정민과 이정현이 맡은 배역들 모두 일차원적이고 평면적인, 탈출극을 그리기 위해 쉽게 만든 캐릭터들 같다. 송중기는 때마침 행동력이 뛰어난 광복군이며 황정민이 가진 부성애는 적재적소 감정을 쉽게 건드린다. 특히나 위안부 피해자를 연기한 '조선인들의 대탈출 서사시'라는 사건을 진행하기 위한 장치들일 뿐이다. 피해자들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라면서 정작 피해자들의 모습이 지나치게 인위적이라면 대체 그들의 모습은 누구의 기억인가? 이렇게 기억하는 것은 지나치게 쉬운 것 아닌가? 황정민은 이 영화에 참여하기 전 류승완 감독에게 '국뽕'영화는 찍지 말자 당부했다 한다. 이것이 진정 국뽕 영화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애국이 또 한 번 비싸졌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불행히도 '기록 작가' 하야시 에이다이의 건강이 호전될 확률은 적다고 한다. 젊을 적, 수많은 조선인과 아버지의 한을 풀기 위해 기록하는 일로 접어든 그의 삶도 황혼을 훌쩍 넘긴 것이다. 안타깝지만 그는 오래 못 살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의 작업실 '아리랑문고'도 문을 닫을 터. 그러나 육신이 사라진다고 기록이 사라질까. 기억하던 몸뚱이는 사라져도 몸뚱이로 기억한 증거들인 기록은 더 오래갈 것이다. 누군가가 평생에 걸쳐 기억한 것들은 그럴 가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_글 채한영 


Amor _아무 것도 모르면서. 우리들의 영화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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